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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화 풀어주는 웃음왕 텔레마케터, "청소년기 방황이 날 단단하게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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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6일 경기도 성남 한국도로공사콜센터에서 배현미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김경빈 기자]

“고객님, 차량번호가 ‘도레미’ 할 때 ‘도’ 맞으시죠?”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성남의 한국도로공사콜센터. 60명의 텔레마케터 사이에서 배현미(21·여)씨가 눈에 띄었다. 목소리 톤에 따라 눈과 입을 유난히 분주하게 움직였다. “목소리에 진심을 담으려다 보면 표정도 자연스럽게 따라가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날의 47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보통 하루 100~130콜을 받는다. “네, 고객님. 이미 결제된 내용입니다. 요금 청구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한국도로공사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배씨가 18일 제10회 청소년푸른성장대상을 받는다. 여성가족부·중앙일보·문화방송이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일해 온 개인·단체·청소년에게 수여된다.

 배씨는 2012년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를 졸업했다. 폭력이나 절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는 곳이다. 초등학생 때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순탄치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교에 있는 9개월 동안 텔레마케팅 훈련을 받았다. 관련 자격증도 2개 땄다. 남보다 부족하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 결과 5대 1의 경쟁을 뚫고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다.

 텔레마케터는 매일 쏟아지는 ‘불만’을 듣고 대응해야 하는 직업이다. 배씨는 자신의 경험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저는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잖아요. 고객이 아무리 화를 내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요. 화(火)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텔레마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사람”이란다.

 어느덧 입사 3년차. 배씨는 매월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지난달에는 주임으로 승진했다. 박정선 센터장은 배씨를 두고 “센터 내 ‘긍정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각 팀장들도 모두 데려가려고 탐을 내는 친구”라며 “일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서 배씨는 이미 유명인이다. 분기마다 후배들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일하는 콜센터로 편지를 보내는 후배도 생겼다. 배씨는 후배들에게 늘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얘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주변의 도움을 다 거절했어요. 힘들 때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만도 큰 위안이 되는데….”

 배씨의 다음 계획은 대학에 들어가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열심히 학비를 모으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말을 하는지를 알고 싶어요. 그럼 더 잘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후엔 심리상담사나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부터는 전화로 독거노인에게 말벗이 되어드리는 봉사도 시작했다.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민병석(47) 교사는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또 다른 꿈을 만들어 나가는 희망적인 롤모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혜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수상자 명단=▶개인:조정실(한국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대표) ▶단체:삼성엔지니어링·전주YWCA ▶청소년 개인:강석진(경기 장곡고)·김진실(홀트학교)·배현미(한국도로공사콜센터)·현정아(순천대) ▶청소년 동아리:꽃가마(충남 계룡)·늘품(부산 중구)·대학생 진로 스토리텔러(서울)·무한도전 틴스클럽(충남 천안)·청운복지회(충북 청주)·함양학생연극회(경남)·앤젤스 프렌즈(전남 순천)·비-플라이(경기 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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