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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야구, 쉴까요 뛸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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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해 1월 9일 이승엽을 비롯한 삼성 선수들이 경산볼파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시무식이 끝난 뒤 가볍게 몸을 푼 것이지만 야구규약에 따르면 비활동기간엔 단체훈련을 할 수 없다. [중앙포토]

“계약직 사원이 월급 안 나올 때도 일 해야 하나.” (선수협회 지지자)

 “방학이라고 해서 숙제도, 공부도 안 할건가?” (김성근 감독 지지자)

 프로야구 겨울 훈련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프로야구선수협회는 “12월과 1월에는 단체훈련을 금지하는 게 원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충식(44) 선수협회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10년 가까이 잘 지켜진 약속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성근(72) 한화 감독은 “12월에 훈련을 멈추면 11월까지 흘린 땀이 소용 없다. 훈련 중지는 자살행위와 같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과 선수협회가 충돌하자 팬들도 논쟁에 참여했다. 야구선수의 월급이 연 10회(2월~11월까지)만 나오니 비활동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꼴찌가 놀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김 감독의 주장을 지지하는 팬들이 더 많다.

 비활동기간에 대한 시각차가 큰 것은 프로야구 선수가 근로자 특성과 개인사업자 특성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조직원, 즉 근로자로 여기고 장악하려는 것이다. 반면 선수협회는 계약기간 외에는 선수들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맞서고 있다.

 ◆계약기간엔 근로자에 가까워=법률상 프로야구 선수들은 사업자와 근로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비슷한 고용형태를 굳이 찾자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가깝다.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서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 보험설계사·학습지 교사·골프장 캐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1983년 노동부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 국세청도 이들을 ‘직업 운동가’로 분류해 연봉의 3.3%만 원천징수한다. 산재보험 가입, 노동조합 설립 등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법원은 프로야구 선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근로자의 성격이 상당히 강하다. 선수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훈련과 경기)을 제공하고, 고용주(구단)의 지시를 받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수의 계약 형태는 프로야구 뿐 아니라 프로축구 등 다른 종목들이 거의 비슷하다. 외국 리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약기간엔 월급쟁이에 가깝고, 비활동기간에는 사업자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야구규약과 비슷한 일본의 규정은 12월과 1월의 활동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선수협회가 비활동기간을 보장하라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특수성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일본처럼 선수층이 두텁고 육성 시스템이 발달했다면 구단이 돈과 노력을 들여 겨울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선 선수 자원이 제한돼 있고, 프로 구단만이 정상적인 훈련 지원을 할 수 있다. 개인 비용으로 해외를 가거나 트레이너를 고용할 수 없다면 ‘한국식 훈련’이 필요하다.

 ◆비활동기간 변경 등 고려할 만=현재의 규약은 선수와 구단이 한 발씩 양보한 것이다. 12월에 쉬는 대신 1월 초 자율훈련을 시작하고, 1월 15일 스프링캠프로 출발한다. 12월 훈련은 재활선수와 군제대 선수에게만 허용되는데, 김 감독이 12월 일본 전지훈련을 추진하자 선수협회가 항의했다.

 현재 분위기는 선수협회에 불리하다. “각 구단 주장으로 구성된 선수협회 이사회가 저연봉 선수들의 권익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서재응(37·KIA) 선수협회 회장이 지난 2일 정기총회에서 “재활 선수도 훈련할 수 없다. 그런 사례가 있다면 벌금을 부과할 것이며, 해당 구단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재활훈련이 필요한 선수와 경제력이 없는 선수들의 권리를 해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야구계에서는 이 기회에 비활동기간 훈련을 재논의 하자고 한다. A구단 단장은 “모든 구단이 큰 돈을 들여 야구장 시설을 개선했다. 저연봉 선수들이 시설을 쓰는 걸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봉에 따라 훈련대상 선수를 정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예를 들면 연봉 5000만원 이하의 선수들은 비활동기간에도 구단의 지원을 받아 훈련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11월 가을캠프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11월부터 12월 사이에 쉬자는 의견도 있다. 김 감독이 걱정하는 ‘훈련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도 있다. 정금조 한국야구위원회(KBO) 운영육성부장은 “비활동기간을 조정하는 방안은 생각해 볼 만하다. 조만간 선수협회와 만나서 여러 얘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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