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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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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기도 가평의 북한강 줄기 한가운데 떠 있는 자라섬입니다.

자라가 많아서? 아닙니다. 자라처럼 생긴 산 '자라목'이 섬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얻은 이름이거든요.

바로 이웃에 있는 남이섬엔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이지만, 저는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오늘은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잠을 깨웁니다.

지난해 이맘때도 시끌벅적했는데 또 시작이네요. 대체 무얼 하는 소린지 사연이나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글=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인구 6만 명이 채 안 되는 가평군에는 록밴드가 딱 하나 있다. 1996년 결성된 '북한강'. 이들은 2~4일 가평에서 열리는 '제2회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아마추어 무대에서 3일 오후 1시부터 공연한다. 북한강은 록.팝.가요.트로트 등 '재즈만 빼고' 다 연주한다. 하지만 가평의 유일한 밴드로서 당당히 무대에 서게 됐다.

▶ 가평의 대표 밴드 '북한강'이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자라섬에서 음악 삼매경에 빠졌다. 왼쪽부터 박창문(보컬).민기선(트럼본).정택원(드럼).남궁본(콘트라베이스).김애선(색소폰).김경중(트럼펫).박영진(기타).김은식(테너 색소폰). 가운데 남궁본씨와 김애선씨의 원래 포지션은 드럼과 키보드. 재즈 분위기를 물씬 내려고 빌려온 악기를 대신 잡았다.

정식 단원은 모두 10명. 최고령자인 회장 김은식(47.테너 색소폰)씨부터 최연소자이자 홍일점인 김애선(25.키보드)씨까지 20년 이상 터울이 진다. 음악 경력과 직업도 다양하다. 김은식씨는 서울에서 아마추어 경음악단 활동을 하다 10년 전 가평으로 돌아와 민속품 상점을 꾸리고 있다.

그와 초.중.고교 동창인 김경중(47.트럼펫.호프 레스토랑 운영)씨는 음악 경력에서 밀려 감투를 쓰지 못했다. 정택원(45.드럼.건설회사 직원)씨는 대학 재학 시절 드럼을 연주했고, 졸업 후 야간업소 밴드로 몇 년간 활동했다.

직업 군인 출신인 보컬 박창문(41)씨는 꽃집을 운영하다 지난해 건설회사 이사를 맡았다. 체대 출신인 박영진(30.기타)씨는 '테니스 라켓과 비슷하게 생긴 기타'를 어릴 때부터 쳤단다. 멤버 중엔 학원 강사, 우체국 직원, 한국잠수협회 가평지부장, 지역신문 기자도 있다.

민기선(30.트럼본.트로트 보컬)씨는 그중 가장 튄다. 내년께 트로트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란다. 그는 "고교 시절 단란주점에 가면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사모님들의 사랑을 받는 등 술 마시고 노래하다가 재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모두 가평 중.고교 선후배인 멤버들 가운데 기선씨는 유일한 외지인이다. 가평에서 9년간 군악대 생활을 하다 제대 후 이곳에 정착했다. 예비 단원 남궁본(23.드럼)씨는 고교 시절 북한강 밴드에서 무료로 드럼을 배웠다. 그리고 음악 대학에 진학했다.

밴드의 영향을 받아 음대에 진학한 가평군민이 10명가량 된단다. 북한강은 가평의 음악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밴드를 10년째 이어오기가 쉽지는 않았다.

남의 집 창고를 빌려 연습실로 쓰다가 '시끄럽다'며 쫓겨나기도 여러 차례. 그러다 재즈 페스티벌이 생긴 뒤 가평 내 위상이 급상승했다. 탄탄한 10인조 체제를 갖추고 방음장치가 돼 있는 월세 8만원짜리 연습실을 마련했다. 멤버 중 세 명은 얼마 전 가평 읍내에 문을 연 '자라섬 재즈 센터'의 이사로도 참여했다.

"TV만 보던 주민들이 페스티벌을 접한 뒤 문화적인 눈을 떴어요. 다들 '(기분) 째져'는 알아도 '재즈'는 모른다고 했었거든요. 이젠 우리를 부러워해요."

▶ 자라섬 재즈 센터 내의 타악기 전시 체험실을 찾은 가평 아이들. 무령(무당방울)부터 큰북까지 국내외 각종 타악기를 실컷 두드려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골 마을에서 어떻게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게 됐을까. 시작은 우연 같은 인연이었다. 2002년, 가평군 문화관광과 이문교(42) 주사는 서울에서 이틀짜리 문화예술기획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었다. 강사 개인 사정으로 재즈 공연 기획사 AMP 인재진 대표가 특강을 대신했다. 이 주사의 머릿속에 생경한 '재즈'라는 두 글자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 년 뒤. 가평군청 공무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색 있는 지역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자리였다. 당시 부군수가 '재즈'라는 화두를 던졌다. 가평의 젊고 깨끗한 이미지와 재즈가 맞아떨어졌다. 이 주사는 인 대표에게 성사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e-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국내 유일의 국제 재즈 페스티벌을 2004년 9월 10~12일 자라섬에서 열기로 했다.

모든 게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자라섬은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특성 때문에 황무지로 내버려져 있었다. 당연히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흙을 실어 날라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고 전기 설비를 갖췄다. 잔디밭을 조성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빨리 자라는 청보리를 심었다. 게다가 주민들은 "재즈는 무슨 재즈…. 입장료를 1만원이나 내는 축제에 누가 오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행사 첫날, 2만5000명이 몰려들었다. 가평 토박이인 문화관광과 민병엽(52) 계장은 "태어나서 외지인이 그렇게 많이 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이 돕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공연을 강행하기로 했지만 배수로를 설치하지 않은 청보리밭이 문제였다. 스피커가 질퍽해진 바닥에 잠겼다. 급기야 감전 사고가 일어났다. 오후 3시30분, 공연은 취소됐다. 관객은 환불해 달라며 아우성쳤다.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가평까지 찾아온 관객들이었다. 집에 돌아간 관객들은 인터넷에 잇따라 항의 글을 올렸다. 셋째 날은 비가 더 왔다. 안전 장치를 보강한 뒤 한쪽 무대만 열었다. 가슴 졸인 가운데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 애꿎게도 페스티벌 다음날 아침에야 날이 갰다.

"그런 푸닥거리는 처음 겪었네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올해는 비가 와서 공연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배수로를 만들었다. 1만5000평 규모의 코스모스밭도 조성했다. 민 계장은 주말이면 아침 7시에 자라섬으로 출근해 인부들과 함께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느라 얼굴이 새까매졌다.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도 마련했다. 가평은 아예 재즈의 고장이 됐다. 군청 화장실에도 재즈가 배경 음악으로 깔릴 정도다. 주민 참여를 늘리기 위해 축제를 찾아온 손님을 재워 주는 '홈스테이'도 시작하기로 했다. 8월엔 읍사무소를 뜯어고쳐 '자라섬 재즈 센터'를 열었다. 창고는 공연을 할 수 있는 클럽으로 변신했다. 각국의 타악기 1000여 점을 기증받아 체험 전시실도 열었다. 1000여 장의 재즈 CD를 골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입장료 수입은 미미합니다. 그러나 이 축제에 몰려든 사람들이 가평에서 먹고 자면서 지역 경제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행사 실무자인 민 계장과 이 주사에게서 흔히 복지부동에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원래 그런 건 아니었단다.

"지금껏 시키는 일이나 조례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생각하면서도 이 일만큼은 한번 제대로 해내고 싶네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거라 재미있나봐요."

이들은 페스티벌 때문에 정기 인사 이동도 마다했다. 혹 재즈에 미친 사람들일까.

"아이고, 페스티벌에 온 젊은 사람들은 좋아서 방방 뛰던데…. 우리는 아무리 들어도 재즈가 뭔지 도통 모르겠습디다."

가평군은 이번 페스티벌에 7만~8만 명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평군 인구보다 많은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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