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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4)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7) 장창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사관졸업생의 맏형격인 육사1기생은 스스로를 두고 「특징이 없는것이 특징」이라고들 말한다.
앞서 5·16같은 군인의 역사적인 변혁에 소외됐던 것을 말했지만 1기생들은 여타의 다른 기에 비해 동기들끼리 집단으로 움직이는 성향이 엷었다.
이는 절대적으로 숫자가 적은데다 교육기간도 짧았고 임관후에도 창군요원으로 여기 저기 옮겨다녀 상하의 명령체계의 횡적인 연락을 갖기 어려웠던 탓으로 분석할수 있으나 1기생들의 기질에도 원인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바람직한 것으로는 볼수 없겠으나 우리 군안에서 동기생끼리 뭉쳐 「세력」을 형성했던 것은 2기, 5기, 8기가 특히 두드러졌다. 5·16은 바로 8기가 주축이 되고 5기 일부가 가세, 2기의 박정희소장을 리더로 내세워 이루어진 것으로 볼수 있다.
1기생들은 대부분 연대장(중령)으로 6·25를 맞았고 전쟁말기 장성에 진급했다. 사단장·군단장 등으로 일하다 5·16후 60년대초반 많은사람이 퇴역했다.
임충식·서광철장군만이 그뒤까지 군에 남아 대장까지 진급, 각각 합참의장(임·67·4∼68·8)과 육군참모총장(서·69·8∼72·6)을 역임했으며 퇴역후엔 또 국방장관(임·68∼70년, 서73∼77년)을 지냈다.
임장군은 74년 작고했다. 서장군은 현재 반공연맹이사장, 프로야구커미셔너로 아직 일선에서 활약중이다.
1기 임관자 40명 가운데 전사8명, 숙군관련자 6명을 빼면 26명이 군에서 성장했는데 그중 현재 생존자는 18명이다.
아직 사회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서장군외 김점곤장군이 경희대학교경영대학원장으로, 한당욱준장이 동덕여대교수로, 연일수준장이 부산수산센터사장으로있다. 김점곤장군은 5·16후 국방차관보로 옮겨 우리군인사 행정에 전기가 되는 군인사법을 만든 다음 소장으로 예편했다. 경희대교수로 국제정치·군사학을 강의하고 있다. 군에 있을때부터 연구를 계속해온 김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안보문제에는 「권위」로 꼽힌다. 김소장이 만든 군인사법에 따라 우리군엔 처음으로 계급정년제가 도입됐고 6·25후 정체됐던 군인사에 숨통이 트였다.
임부택소장은 1군단장에서 62년 예편후 한동안 반혁명오해가 안풀려 보직없이 지내다 74년에야 한비감사로 자리를 얻었다. 5년간 감사로 있다 나와 현재는 보험회사대리점을 자영하고있다. 김동빈중장은 육본기화관리실장등을 거쳐 중장으로 예편한뒤 현재 농장을 경험한다고 한다.
황엽소장도 국방부 관리차관보를 지내고 예편한뒤 전매협회 회장일을 몇해 맡아보다 그만두고 현재는 고향철원부근에서 농장을 하며 소일한다고 들었다. 황소장은 5·16후 벼락진급사태를 정면 비판한 강직한 군인이었다.
오창근소장은 1군부사령관·육대총장을 거쳐 예편후 산업기지개발공사부사장으로 오래 일하다 그만두고 역시 경기도 여주에 있는 농장을 돌본다고 한다.
전투에서 이름을 날리진 못했으나 다른 방면으로 큰 공헌을 한 1기출신 장성은 이원장소장이다.
이형량장군의 아낌을 받았고 나중 감찰감·사단장을 역임한 이소장은 감찰감 재직때 말썽많던 군「후생사업」을 금지시킨 장본인. 군부패의 요인으로 변질한 후생사업을 일체 금지토록 건의, 군의 정화에 이바지했다. 예편한뒤 자유당말기 고향인 충남 서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 해방후 군출신 최초정계진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창적소장온 3군단장에서 예편후 국제기능올림픽사무총장·한국메탄올사장 등을 역임한뒤 80년2월 고혈압으로 작고했다.
김용주·김봉철준장은 농장을 경영한다고 하며 연일수준장은 현재 부산수산센터사장. 통신분야에서 활약이 컸던 한당욱준장은 김점곤교수처럼 퇴역후 대학에 진출, 동덕여대에서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육본전사감을 지낸 한영주준장은 4∼5년전 가족과함께 미국에 이민했고 윤군항공대를 창설, 함공감까지 오른 박종민준장은 예편후 재보험공사상무로 10여년 일하다 은퇴, 집에서 쉬고있다.
경리·병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최경남준장은 예편후 군납사업에 손을 대 월남에서 고철강사로 큰돈을 벌기도 했다. 나중엔 실패하고 고혈압·당뇨등으로 2년여 고생하다 지난5월 작고했는데 늘 『김형욱재산 반은 내가 주었을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1기생모임의 연락을 맡고있는 김도영대령은 4·19 전에 예편한뒤 한때 국회전문위원을 지내다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고있다. 1기생중 유일한 상이군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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