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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형사' 이명세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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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이명세 감독은 “모든 영화의 드라마는 영화 속에 있지 않고 관객의 눈 속에 있다”고 알듯말듯하게 말했다. 관객들이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안성식 기자

사극의 외피를 쓴 '형사'는 한마디로 옮기기 어려운 영화다. 화면? 당연히 화려하다. 선무도.탱고를 차용한 대결, 총천연색의 세트,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비, 무성영화.그림자 연극풍의 유희적 연출에 흡사 럭비경기 같은 액션까지 현란하게 연결된다. 여기에 날카롭게 울리는 음향과 음악을 더해 '종합예술'로서의 영화에 마음먹고 도전한 모양새다. 줄거리는 이렇다. 안포교(안성기)와 함께 가짜 화폐의 유통 범인을 뒤쫓던 여포교 남순(하지원)은 배후에 병조판서(송영창)의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만 판서가 거느린 자객 '슬픈눈'(강동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칼싸움이 아니라 마치 사랑싸움처럼 그려진 '탱고 액션'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남순과 슬픈눈의 대결은 액션만으로도 에로틱한 사랑이 느껴지도록 찍고 싶었는데, 내심 걱정이 많았다."

-반면 줄거리 군데군데 빈틈이 많다. 영화에 감정이입하려면 선머슴 같던 남순이 순정만화의 꽃미남 같은 슬픈눈에게 반하는 과정에 공감할 수 있느냐가 결정적일 것 같다. 그런데 슬픈눈은 인물의 배경도, 남순에게 매료되는 이유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 예쁜 선남선녀가 서로 반하지 않을 리가 없지.(웃음) 나 같은 얼굴이면 남순이 사랑에 빠지는 데 구구절절 설명을 해줘야 하지만 강동원이라면 아니다. 지원이도 예쁘지 않나. 친숙한 얼굴, 즉 스타가 나오면 많은 부분을 생략할 수 있다. 여태껏 보여준 것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쌓아올릴 필요가 없다. 연기자를 캐스팅하면 그것이 이미 미장센의 요소이고, 내러티브의 요소가 된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론처럼, 모든 예술에는 어떤 사물을 얘기하는데 가장 적합한 그 무엇이 있다. 슬픈눈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까 갖은 테스트를 다 해봤다. 그 눈빛이 컴퓨터 그래픽 아니냐고도 하던데, 서클렌즈만 꼈다. 남순도 첫사랑이지만, 슬픈눈도 그렇다. 사랑의 감정에 순진하고 어리숙한 청년이다. 둘의 만남을 서투르고 설레는 첫사랑의 느낌으로 찍었다."

-슬픈눈은 원래 말수가 적은 인물이지만, 남순과 안포교가 만담 형식으로 주고받는 대사도 정확히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슬픈눈은 남순이 바라본 입장에서 그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뭔가에 씐 듯한 느낌으로. 말을 너무 많이 하면 그런 느낌이 안 날 것 같았다. 안포교와 남순의 대사는 일부러 전라도 사투리를 써서 리듬감을 강조했다. 예전 '남자는 괴로워'에 악질부장이 부하에게 마구 쏘아붙이는 장면이 있었다. 긴 대사를 넣는 대신 10초,9초 시간을 재면서 경주하듯 읊게 했다. 결과적으로 자막이 없어도 미국 사람들까지 내 영화 중에 제일 잘 이해하는 대목이다. 대사 역시 일종의 영화 사운드다."

-소위 '비주얼'에 목숨을 거는 건 젊은 감독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당신을 "여전히 철 안든 아이 같다"고도 하던데.

"하하. 고마운 얘기다. 영화란 영원히 영(young)한 거다. 그렇다고 피터팬 신드롬은 아니고, 늘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세상을 보려고 한다. 덜 성장해야 고정관념이 없지."

-이번 영화를 두고 제일 듣기 싫은 말이 '퓨전 사극'이라고 들었다.

"기존 사극과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뭔가 다른 걸 끌어온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안 섞었다. 재료 그 자체다. 한 번도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는 말이 제일 듣고 싶다."

-반대로 이 영화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게 눈, 낙엽, 계단이라는 걸 확인시켜 준다.

"구르고, 흐르고, 움직이는 게 좋아서다. 좁은 골목이나 계단이 보여주는 시간의 흔적과 기하학적인 구도가 좋다."

-'형사'라는 제목 뒤에 '듀얼리스트'(duelist)라는 영어제목을 굳이 붙였던데.

"북미시장 진출에 대비해 포스터 값 아끼려고 그랬다(웃음). 이번 영화는 '대결'(duel)의 얘기라서다. 형사와 범인의 대결과 남순과 슬픈눈의 사랑대결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다. 그 행간을 관객들이 어떻게 읽어줄까 제일 궁금하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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