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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주가 동반 추락 … 이게 웬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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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세계 주요 주식시장이 지난주 말 휘청거렸다. 미국 다우지수는 1.8% 떨어졌다. 유럽 주가는 2.5% 안팎으로 추락했다. 최근 주가 오르내림을 감안하면 엄청난 요동이다. 방아쇠는 국제유가 추락이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값은 배럴당 57.81달러까지 곤두박질했다. 금융위기 와중인 2009년 6월 이후 5년 새 최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년 원유 수요가 올해보다 더 줄어든다”고 전망한 게 화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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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룸버그통신은 “(주가 급락이) 놀라운 반전”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세계경제연구원(IGE) 사공일 이사장은 “유가 하락은 에너지 수입 국가에선 돈을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실물 경제에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회사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가는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주 말 주가는 반대로 움직였다. 2000년 이후 보기 드문 유가-주가 하락의 동조화다.

 동조화의 핵심은 ‘원유의 금융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원유는 거래량이 엄청난 금융자산”이라며 “유가 하락이 금융 연결망을 통해 주가에 영향을 준다”고 보도했다. 연결망 중심에 요즘 상장지수펀드(ETF)가 있다. 유가 흐름을 거의 100%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된 펀드다. 일반 뮤추얼펀드가 ETF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원유에 투자했다. 미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헤지펀드와 원자재 펀드나 했던 원유 투자가 ETF 등장으로 대중화했다(원유의 금융자산화)”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유가하락→뮤추얼펀드 수익률 하락→환매 증가→주식 매도 순으로 이어지는 유가-주가의 포트폴리오 채널이 지난주 말 작동했다”고 전했다. 이 채널을 통해 실물경제와 자금시장 상황이 국제유가와 주가에 동시에 반영된다. 실제 글로벌 시장은 IEA의 원유 수요 감소 전망을 실물 경제 악화로 받아들였다. FT는 “IEA 예측은 투자자들이 내년 경제를 더욱 비관적으로 보도록 했다”고 밝혔다.

 유가 급락으로 글로벌 자금시장 한편에선 돈줄이 마를 조짐도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 비우량 회사채(정크본드) 가격이 급락했다. 주로 셰일 에너지기업들이 발행한 채권들이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주 말 이들 채권의 시장금리(만기 수익률)가 연 7%를 넘었다. 유가 급락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이 엿보여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셰일에너지 기업이 발행한 정크본드는 11월 말 현재 5500억 달러(약 600조원) 정도다. 미국발 금융위기 방아쇠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두 배 이상이다. 또 다른 돈가뭄 가능성도 엿보인다. 유가 하락에 따른 오일머니의 수축이다. 한국의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저유가가 지속되면 지난 몇 년간 각국 중앙은행, 차이나머니와 함께 금융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던 오일머니가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오일머니는 지난해 말 현재 6조1000억 달러(약 6700조원)가량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해마다 3500억 달러씩 글로벌 시장에 흘러들었다. 산유국 국부펀드가 해외 주식·채권 시장과 인수합병(M&A), 자금시장에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턴 아니다. BNP파리바증권은 “올해 유가 하락으로 18년 만에 처음으로 오일머니 유입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 안남기 연구원은 “오일머니 유출 속도가 빠르진 않겠지만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만 “국내시장의 경우 주식·채권시장에 유입된 오일머니가 11조5000억원 수준이라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남규·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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