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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들려주듯 평범한 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그것은 「몸살」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해마다한 해가 저물어가는 11월의 첫머리에서 「신춘문예 작품」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대하면, 손끝이 우선 떨리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마치 큰 빚을 지고 남 모르게 숨어 다니던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서 빚장이와 맞닥뜨리고만것과도 같은 그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할수있으랴.
『나는 파산했읍니다. 내가 소설을 쓸수 있으리라고 믿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그해 겨울교직원 구내식당의 구석자리에서 혼자 울었다. 사무치게 외로운 겨울이었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무엇하러 전국대회 백일장에는 그렇게 많이 나갔던가. 허리가휘이는 기대와, 멍에가되는 상만 무겁게 짊어진 채일어서지도 못하고 나는 젊음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아픈것은 10년을 하루같이 나를 기다리고있는 사람들의 말없는 눈빛이었다.
누가 무어라고 하더라도 너는 반드시 해낼것이라고 믿고 있는그 시선에 쫓겨 나는 원고를쓰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단 한번도 무슨 「동인」활동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나 혼자 앉아서 나혼자 쓰면서 밤을 새워 고치고 이튿날은 다시 썼다.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며 원고정리를 했는지 한번 잘못쓴 글자를 지우고 옆에 쓰기가 아까와서 일일이 칸을 맞추어 원고지를 오려 붙이곤 했다.
또한 그 소설의 소재도, 구성도, 문체도, 지금까지 몹시 긴장하며 썼던 것과는 달리, 특별히 신기하거나 괴이하게 꾸미거나 굉장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내가 잘 아는」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심정으로 그려 나갔다.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의 길고길었던 어둠을 단칼에 내리쳐서 한 순간에 복수하듯이 찬란하게, 폭죽처럼 터지겠다는 욕심을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그 윈고를 쓰던 만년필의 뚜껑이 벗겨지면서 촉 끝에서 검은 잉크가 냇물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꿈이었다.
그러나 정말이지 당선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다만 한 평생 할 일이니 언제나 열심히 쓰리라고만 다짐했으며, 아무러면 때가 안오랴, 하고 여전히 나는 또 다시 다음해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뜻밖에도 당선의 통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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