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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맞은 단자업계-개막식은 「인재쟁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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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규설립이 자유화된 단자업계는 벌써부터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미 문을 연 신한과 한일투금을 비롯해 막차를 탄 태평양투금까지 합치면 모두 9개의 단자회사가 늦어도 내년초까지는 신규설립 될 예정.
7개회사가 10년 동안 안주해온 기존시장에 그보다도 더 많은 9개회사가 새로 끼어 들게되었으니 서로 물고 물리는 치열한 금융전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사무실도 채 차리기 전에 전쟁은 사람 「뺏기」「안 뺏기기」로부터 시작했다. 기존회사들마다 평균 15∼20명의 알짜 직원들이 이미 사표를 던지고 신규회사 쪽으로 옮겨앉았다. 당분간 더 심해질건 뻔한 노릇이다. 심지어는 지방 단자회사들로부터 까지 스카우트전을 벌이고 있다.
예금 유치전쟁은 신규설립의사가 늘어감에 따라 더 두고 볼일이지만 어차피 기존예금을 둘러싼 이전관구 현상을 면키 어렵게 되어있다.
신규회사들끼리의 신경전도 대단하다. 특히 점포만은 금융의 본가인 명동중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이 서있다. 동아·삼희·금성 등 3개회사가 구 코스모스 백화점 2·3층에 다닥다닥 붙어서 사무실을 차리고 있는 것이 그러한 예의 하나다.
9개 신규회사의 임원진 구성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다. 우선 첫번째 공통점은 아직 미정인 국민과 태평양투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7개회사의 사장이 모두 은행임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또 부사장·전무·상무 급에도 숫적으로 은행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년전의 은행가 임원 대량 사퇴가 이번 단자회사 신규설립에는 안성마춤(?)이었던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회사마다 대부분 부사장이나 전무 급에는 기존 단자업계에서 웬만큼 길을 닦은 인물들을 확보했고 특히 업무의 핵심인 영업부장 출신이 임원 급으로 승진 기용된 케이스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첫번 개점 테이프를 끊은 신한 투금은 전 한일은 상무 김용술씨를 사장으로 해서 동양투금을 거쳐 동양증권 상무로 있던 박정규씨와 서울신탁은 상무였던 전유상씨를 각각 부사장으로 앉혔고 김진호·단사천·남상옥씨 등 다른 회사에 비해 이름난 왕년의 전주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다.
한일투금은 전 국민은행 전무 윤철정씨를 사장으로, 부사장과 상무에는 모두 서울투금에서 전무와 이사로 있던 홍기찬·나용주씨를 스카우트했다.
현재 영업중인 이 두 회사는 대주주인 김진호씨와 배현규씨가 모두 상근 회장으로서 매일출근하고 있어 회장제도가 없는 기존 회사들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오는 17일 개점할 예정인 동아투금은 부산을 동향으로 한 중소기업사장들을 중심으로 해서 사장에는 추인석 전 한은이사가, 부사장과 상무에는 모두 한일은 지점장출신인 장한규·배진성씨를 앉혀 고위간부진을 은행 일색으로 꾸몄다.
삼희투금은 사장선임에 고심을 하다 전 중소기업은행장 박동희씨를 맞아들였고 부사장 2명에는 대주주인 한국화약 쪽에서 나온 고병찬씨와 전 조흥은행 전무 신영철씨를 앉혔다. 다른 대주주인 박의송씨(삼보증권상무)는 당초 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 나설 것을 강력히 희망했었으나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라는 정부측의 종용에 따라 물러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삼투금은 삼환기업·삼부토건이 공동 출자한 회사답게 김관수 충청은행장을 정점으로 해서 각사에서 나온 정병렬 삼부토건 상무와 이춘배 삼환종합기계 사장을 나란히 전무로 배치했고 상무에 은행출신 조동래씨와 광주투금의 이진수씨를 앉혔다.
동아건설 계열인 고려투금은(내인가 때는 한미투금) 사장에는 전 조흥은행 전무 김관호씨, 부사장에 역시 조흥은 출신 최문규씨가 앉았고 대주주 측에서는 양문수 동아건설 상무가 나왔다.
영업 담당이사에는 한국투금의 영업부장으로 있던 곽진수씨가 스카우트 됐다.
금성투금은 전 한일은행 전무 이병국씨를 사장, 대주주 측인 럭키그룹에서는 금성자판 부사장 박우만씨가 부사장에 앉았다.
마지막 티킷을 따낸 태평양투금은 단자시장의 속사정을 잘 아는 대한투금 상무 조동욱씨를 부사장으로 내정, 조각을 서두르고 있는데 개인적인 교분으로 똘똘 뭉쳤다는 48명의 창립 멤버들은 타사에 비해 가장 많은 숫자로 고른 지분 소유를 자랑하고 있다.
개점이후 5백억∼8백억원 수준의 수신규모를 나타내고 있는 신규단자 회사들은 내년 말 목표로 최소한 1천5백억원을 잡고 있다. 기존 단자회사들이 10년 동안에 쌓아올린 3천3백억원 수준의 절반수준을 단 1년 안에 따라잡겠다는 기염이다.
설립자유화의 원래취지대로 사채자금을 얼마나 신규예금으로 끌어들일지 두고볼 일이지만 이쯤 되면 예금유치 경쟁은 과열로 치닫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팽이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장 생리 속에 생존을 위해서는 자칫 시장질서 자체가 뒤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쨌든 초비상이 걸린 단자업계는 모두 전시체제로 돌입했다. 선의의 경쟁으로 발전된다면야 서비스도 개선되고 금융제도에도 큰 혁신을 이룩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기존예금을 놓고 치고 받는 과다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팩토링(외상대출금을 담보로 한 전도금융) 과 같은 새로운 영역개척으로 돌파구를 열어야할 것이다.
럭키계열의 금성투금과 금성사제품 대리점을 이용해 이미 팩토링 전문단자로서 성격을 분명히 하고 나섰듯이 회사마다 특화·전문화의 길을 열어야 기대하는 선의의 경쟁도 가능할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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