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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충격적 고문 실태…"빗자루로 성폭행 하겠다" 위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권 미국’이 안팎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9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이뤄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고문 실태 보고서가 공개되면서다. 국내적으론 전 정부와 현 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선 책임자 처벌 요구가 나온다. 미국의 인권 외교가 발목을 잡힐 조짐도 보인다. 테러 단체들이 고문을 이유로 삼아 보복 공격에 나설 우려까지 제기된다. 미 정부는 해외 공관과 미군에 대해 보안 강화에 나섰다.

528쪽의 고문 실태 보고서는 “CIA의 이른바 선진 심문기법은 보고된 내용보다 잔혹하고 야만적이며 법적 한계를 넘어선데다 핵심 정보를 획득하는데도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며 미 상원의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이 공개한 보고서는 “CIA는 백악관ㆍ법무부ㆍ국무부ㆍ의회 등에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보고를 피해 이를 가렸다”고 비판했다. 또 “CIA의 구금 시설과 심문 프로그램은 미국에 해를 끼쳤다”고 적시했다. 파인스타인 위원장은 “미국 역사의 오점”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전통적인 물 고문, 잠 안 재우기, 구타부터 ‘하얀 방 고문’ ‘직장(直腸) 삽입 고문’에 이르는 신종 고문 사례까지 망라됐다. 이는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이전인 2008년까지 폴란드ㆍ루마니아ㆍ리투아니아ㆍ아프가니스탄ㆍ태국 등에 있는 CIA의 해외 비밀 시설에 잡혀 있던 119명의 테러 용의자중 일부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11월엔 CIA의 비밀 시설에 수감됐던 테러 용의자가 벽과 콘크리트 바닥에 쇠사슬로 묶여져 있다가 다음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강제로 입에 물을 넣는 물 고문은 한 테러 용의자에게 183차례나 가해졌고, 다른 용의자는 물 고문을 받고 신체적 반응을 하지 않은 채 입에 거품을 물기도 했다. 직장을 통해 물과 음식을 주입하는 고문 기법은 USS 콜 구축함 폭파의 주범 혐의자에게 사용됐다. CIA 관계자는 직장을 통한 물 주입을 놓고 “용의자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테러 용의자인 아부 주바이다는 관 크기에 상자에 266시간 동안 갇혔으며 “소리를 지르고 애원했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코발트’로 불린 CIA 해외 구류시설에선 테러 용의자를 테이프로 묶은 뒤 두건을 씌운 채 복도를 끌고 다니며 구타하는 ‘두건 구타’도 행해졌다. 일부 용의자에겐 러시안룰렛으로 위협이 가해졌고, 다른 용의자는 눈을 가린 채 총구를 머리에 대고 전동 드릴로 위협하는 고문도 이뤄졌다. 빗자루 손잡이로 성 고문을 위협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하얀 방 고문’은 수감자의 머리카락, 수염 등을 모두 깎은 채 나체로 흰 조명이 비춰지는 흰 방에 가두고 시끄러운 소음이나 음악을 계속 트는 방법이다. 잠 안 재우기도 성행해 56시간 동안 서 있는 상태로 잠을 못 잔 테러 용의자는 개가 가족을 죽이는 환각 증상을 보였다. “어머니의 목을 따겠다”는 심리적 위협도 등장했다.

보고서는 고문 이후 일부 용의자들은 환각ㆍ망상ㆍ불면증은 물론 자해와 신체 절단을 시도하는 심리적 이상 상태를 보였다고 공개했다. 보고서는 이어 CIA는 특정 언론에 특정 정보를 흘리는 수법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고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CIA 발표와는 달리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정보는 고문과 무관한 다른 채널로 얻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CIA의 가혹한 심문 방식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한다”며 “앞으로 이런 방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계속 행사하겠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CIA 고문의 충격파는 국제 사회로도 번지고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ㆍ인권 특별보고관은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 책임자를 기소해야 한다”고 발표해 부시 행정부의 책임자들을 국제 재판을 통해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인권 외교에 나선 미국이 인권 법정의 피고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국 법무부는 ‘불기소 방침’을 공언했지만 향후 미국의 인권 외교가 CIA 고문 문제로 중국·러시아 등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보고서 공개 지지>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 상원 정보위원장 “조직·개인의 부적절한 행동이 국가 안보란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어”
존 매케인(공화) 상원의원 “국민은 어떤 일이 자행됐는지 알 권리 있어”

<보고서 공개 비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조국을 위해 일하는 CIA 직원들은 애국자, 보고서가 조국에 대한 이들의 헌신을 헐뜯는 것이라면 잘못”
딕 체니 전 부통령 “CIA 심문 프로그램은 법무부의 법률 검토를 거쳐 승인돼 고문은 정당했다”

CIA의 충격적 고문 실태

물고문: 입에 물 부어 질식시켜
시체 놀이: 관 크기 상자에 266시간 가둬
잠 안 재우기: 17일간 수갑 채워 서서 벽에 묶어
감각 이탈: 나체로 하얀 방에 하얀 조명 비추고 음악 크게 틀어
두건 구타: 두건 씌우고 복도 끌고 다니며 구타
러시안룰렛: 눈을 가리고 총구 머리에 대고 전동 드릴 위협
성고문: 빗자루 손잡이로 성고문 위협
가족 협박: 어머니 죽이겠다, 성폭행하겠다 협박
직장 삽입: 직장 통해 물·음식 집어 넣어 용의자 통제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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