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패의 열쇠는 〃통화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은 한마디로 낙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준다. 7·5%의 성장을 자신하고 있고, 무엇보다 기대 밖의 호전을 나타내고 있는 국제수지와 물가의 안정기반 구축이 큰 자랑거리다. 금년 경우로 미루어 볼 때 그럴 만도 하다. 당초 10∼14%수준을 예상했던 물가는 4%수준으로 망 외의 전과를 올렸고, 4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걱정했던 경상수지적자는 15억 달러로 크게 줄었으니 말이다.
전반적인 경기흐름도 내수 쪽에서 이미 불이 당겨져 계속 확산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달러대의 약세가 예상됨에 따라 수출도 내년에 들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적인 판단은 몇 가지 중요한「낙관적인 전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선 세계경제가 금년의 제로성장에서 내년에는 2∼3%는 성장할 것이라는 전제, 교역량 역시 금년의 제자리걸음을 벗어나 3∼5%정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제 등에서 7·5%의 성장률이나 수출목표가 책정된 것이다. 이 같은 수치들이 다분히 희망적인 쪽을 택했음을 기획원 측도 시인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백35억∼2백45억 달러로 책정한 수출목표다. 목표의 상·하한선을 전에 없이 10억 달러나 늘려 잡은 것은 바로 그러한 고인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현실적인 최고목표는 2백40억 달러 선이고 여기에 플러스 5억 달러는 어떻게 해서라도 수출을 늘려야하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 관계실무자들의 솔직한 진단이다.
국내적인 요인으로는 통화정책이 가장 큰 관건이다. 경위야 어떻든 금년에 너무 많은 돈을 풀었으니 내년에는 돈줄을 죄겠다는 것이다.
금년 말 총통화증가율 억제목표가 30%선인데 이것을 내년 말에 가서 20∼22%선으로 낮추겠다는 이야기니까 단기간에 상당한 긴축이 실시되는 셈이다. 어렵더라도 애써 구축한 물가안정기반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해야겠다는 것이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의 첫번째 골자로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인가에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l년 사이에 통화공급을 10%포인트나 줄인다는 것은 누가 봐도 급격한 정책변화다. 77∼78년의 통화증발 이후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총통화증가율을 25%선으로 안정시키는데도 3년이나. 걸렸던 것이 최근의 경험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급격한 긴축에 견뎌낼 만큼 기업들의 체질이 강화되었는가에 달려있다. 예컨대 최근의 부도율이 0·06%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매우 원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것을 바로 미터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부도율이 떨어진 것은 기업체질이 강화된 결과라기보다는 돈이 풀린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한다. 사상파동 이후 뭉치 돈을 불가피하게 풀었던 명분도 다름 아닌 기업들의 연쇄부도 사태를 막자는 것이었고 보면 아직도 사실상의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고있는 한계 기업들은 상당수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6·25이후의 저금리체제는 계속 유지해 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나 실세금리와의 격차는 일시적인 부작용일 뿐이고 점차 정상화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전제를 따져봐야 한다. 우선 통화량 억제와 관련해서 저금리체제에서 오는 자금수요의 증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다.
상호 배반관계인 통화수축과 저금리 고수는 필연적으로 금융시장의 왜곡현상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돈 빌어쓰기는 더 어려워지고 얻어 쓰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싼 이자의 혜택이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힘센 자가 은행돈을 차지하는 파워게임이 일어날 수 밖 에 없다.
채권시장의 수익률 등 실세금리도 곧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 역시 또 하나의 전제를 필요로 한다.
예컨대 회사채수익률이 81년11월에 27%이던 것이 82년 l윌 에는 21%로 떨어졌으니 지금 16%선인 수익률도 내년초에는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채권 값이 떨어지는 것은 돈이 다른 곳에 갈데 없는 여건에서 채권으로 돈이 몰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일단 동면에 들어간 부동산 투기가 다시 봄 기지개를 켜고 나온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어쨌든 7·5%의 성장률로 대표되는 내년 경제의 마스터플랜은 적지 않은 함정들을 안고 있다.
쌀 생산만 해도 농수산부조차 어렵다고 실토한 3천8백만 섬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장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