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 업체까지…터널·댐·다리 258곳 불법 안전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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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터널·댐·방조제 같은 국가 주요시설의 안전진단에 구멍이 뚫렸다. 무자격 진단업체들이 하도급을 받아 안전진단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이런 불법 안전진단 258건이 행해졌다. 안전진단 업체들은 또 일감을 따내기 위해 퇴직 공무원을 영입했으며, 정부부처 일부 공무원은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9일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진단 관련, 불법 하도급을 하거나 뇌물을 주고받은 등의 혐의로 한국시설안전공단 간부 6명 등 23명을 구속 기소하고 21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한국시설안전공단 간부들은 반드시 직접 안전진단을 해야함에도 불법으로 안전진단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 그러고선 공단이 직원을 추가 채용해 안전진단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가상의 직원 앞으로 나온 급여를 챙겼다. 6명 간부들이 챙긴 급여는 총 2억원에 이른다. 시설안전공단은 길이 500m 이상 교량이나 1000m 이상 터널 등 대형 핵심시설의 안전점검과 진단을 맡고 있다. 시설안전공단과 관련해 이뤄진 불법 안전진단은 모두 65건이다.

시설안전공단이 맡지 않는, 중·소형 기간시설 안전진단에서도 불법 하도급이 적발됐다. 길이 500m 미만 교량 등은 예컨대 한국도로공사 같은 관리 기관이 자격을 갖춘 업체에 진단을 맡기게 돼 있다. 진단을 맡은 업체는 절대 하도급을 줄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진단을 맡은 업체들 상당수는 기술인력과 장비를 갖추지 못한 무자격 업체에 재차 하도급을 줬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받은 안전진단 대가의 55~65%를 지급했다. 검찰이 밝혀낸 이런 식의 민간업체간 불법 재하도급은 모두 193건에 이른다.

재하도급을 받은 무자격 업체들은 안전진단을 건성건성 실시했다. 교량 콘크리트 내부에 금간 곳이 없는지 등을 알아보는 초음파 시험을 하지 않고 보고서에는 한 것처럼 결과를 꾸며 넣었다. 콘크리트 속에 철근 양을 측정 결과보다 더 많은 것처럼 그려넣기도 했다. 검찰 측은 "철근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정밀하게 재측정 해야 한다"며 "이러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을 조금만 받은 재하청업체들이 결과를 가짜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민간업체들은 또 진단 용역을 따내기 위해 주요기관 퇴직자들을 임원과 간부로 영입해 로비 등을 했다. 이와 관련,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 2명과 공공기관 간부 5명이 구속기소됐다. 국토교통부의 서기관은 2100만원, 해양수산부 사무관은 1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수도권 전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한 간부는 진단을 맡기는 대가로 모두 7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한국도로공사·한국수력원자력·부산교통공사 간부 4명 역시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다.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진단과 관련해 비리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불법하도급과 뇌물수수는 2012년부터 이뤄졌다. 일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올 10월까지 계속됐다. 검찰 관계자는 "안전불감증과 비리 고리가 세월호 참사 뒤에도 여전히 끊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같은 수사 결과를 국무총리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에 통보했다. 또 불법 안전진단이 이뤄진 교량·터널·댐·항만·방조제 등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 등 담당 부처가 안전진단을 다시 실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토부 박영수 건설안전과장은 "안전진단을 재실시하고, 불법 하도급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 규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양·세종=전익진·최선욱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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