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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병출신 민간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학병출신들은 군 이외의 민간부문 각계에도 광범히 확산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나왔다.
부문별로 보면 학계·교육계로의 진출이 가장 많았고 경제계·법조계·언론계·정계·관r계에서도 두드러진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 태생인 김수환 추기경은 일본의 카톨릭계 학교인 상지대 철학과 2학년 재학중 학병에 나갔다가 돌아와 성신대를 나왔다. 작가인 이병주(명치대), 장룡학(조도전대 상과2년·함북 부령), 한운사(일본중앙대·괴산)선생도 학병출신이다. 한씨의 경우 작품의 소재를 학병생활에서 많이 취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교수인 강문용(조도전대·국회의원) 김기두(동경제대법과·구후), 전법제처장 김도창(법학박사·국회의원·보사·문교부차관·명주), 청주대학장을 지낸 김성희(경성제대·금산), 김수한(부여), 박관숙, 서돈각(경도제대), 안병욱, 왕학수(상지대·전부산일보사장), 윤천왕(동경제대), 현승종(경성제대), 조성식, 이중, 정경석(상지대) 교수등이 있다.
숫적으로는 교육계에 제일 많은 것 같다. 중학교 교사로부터 도교육감·대학학장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그중 몇분만 들면 서울교육대학장 서장석(경성제대), 원광대학장 이종녹, 국민대총장 이재철(전인하대총장), 군산교육대학장 박노선(만주건국대), 경기대학장 홍락선, 경기도교육감 이전경, 전경기도교육감 신능순(국회의원·민정)선생등이 있다.
지방 중·고교 교장 가운데 60세 안팎된 분들치고 학병출신 아닌 사람은 거의 없고 지방의 중소기업체장 중에도 학병 출신이 특히 많은 편이다.
고려대 동완교수(함북 명천)의 경우 만주의 신경 건국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던중 학병이 되어 관동군에 배치됐다가 8·15를 만났다. 그는 일본군 장교들과 함께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 3년간 복역 후 석방됐다. 그가 월남하여 외대와 고대에서 노문학 교수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시 포로 생활 중에 배운 러시아어 덕분이라는 것이다.
경제계에서는 재무차관·신탁은행장·중소기업은행장을 역임한 남상진선생(원산태생)을 비롯하여 동방생명의 고상겸(보전상과·강화), 태평양건설의 신능균(일본중앙대·서울), 한국나일론의 박동찬(조도전대), 롯데물산의 이우룡(연전·서울), 서울은행의 홍순갑(일본대), 대한 조선공사의 안정서, 한국화이자의 김중배(연전·의성) 사장등이 학병 출신들이다.
법조계에서도 학병 출신들의 성장이 컸다. 금종경(보전), 나길저(조도전대), 대현(일본중앙대), 심상구(중앙대), 윤일영(서울법전), 윤운영(서울법전), 이병두(중앙대), 홍순상(보전)선생등은 판사·검사·변호사로 활약이 컸던 분들이다.
관계에서는 외교관으로 많이 나갔다. 직업외교관인 박동진 전외무장관(국회의원), 문공차관·전북지사·대사를 역임한 이춘성선생을 비롯하여 김주영, 민충직선생등이 있고 농수산부에는 농촌진흥청청장을 지낸 김인환선생(구주제대·책송)이 있다.
정계로 진출한 학병출신으로는 이철승(보전), 박병배(경성제대), 한건수(조도전대), 구태회(전국회부의장·럭키그룹고문)선생등이 국회의원으로 크게 활약했고 최세경(육영재단이사장), 정우식(일본중앙대)선생도 학병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분들이다.
언론계에서는 중앙일보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이원교선생을 비롯하여 한국일보의 박동운, 조선일보의 유건호, KBS의 이혜복(보전), 언론연구원의 윤임술(입정대) 선생및 문공부장관을 거쳐 체육부장관으로 간 계원경선생도 학병으로 1년7개월간의 병영생활을 해야했다.
언론계·학계·정계를 두루 편력한 신상초선생이나 문화방송사장을 했던 황룡주선생도 역시 학병출신이다.
학병지원을 강행하던 40년대초 일본의 각 대학엔 일본인 학생이 절대다수였고 그 다음으로는 조선인 학생이었다. 일제는 43년 12월에 일본인 학생들에 대한 학병지원을 단행했다.
그 결과 이공계와 사범계를 빼면 조선인 학생만 남아 수업을 할 수 없게 했다.
이듬해 일제는 우리 한인 학생들에 대한 학병 동원과 함께 우리 국내의 전문·대학에까지 동원령을 발동한 것이다.
5·16이후 학병계 장교들이 대거사회로 진출하자 학병 출신들은 사회 각분야에서 재합류, 우리 사회의 거대한 엘리트군으로 결속됐다.
이들이 입대한 날짜를 잡아 63년1월20일「1·20동지회」를 결성했을 때 등록된 회원은 1천2백명이었다. 지금 회장은 박병배선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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