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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의 아시아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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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인들 속에 깊이 잠겨있는 전통적 아시아 관은 논리적으로 상반되는 두 이미지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아시아는 하나』이고 일본도 아시아의 일원이라고 인식하는 속아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이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해 있으나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로부터 이탈하여 서양의 선진, 대국과 대열을 같이해야한다는 탈아관이다.
덕천막부 말기 서구의 물결이 밀려와 일본의 국가적 존립이 위태로울 때 일본은 한국 및 중국과의 제휴를 강조했다. 서구의 중압 속에서 일본은 위태로운 국가의 운명을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단결과 인접국가와의 긴밀한 연대형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명치중기에 이르러 정치체재가 안정되고 근대화가 성취되면서부터 일본의 정책은 탈아의 방향으로 전진했다. 일본의 운명을 한국이나 중국의 운명 또는 아시아의 운명과 같이할 것이 아니라 서양제국과 더불어, 또는 서양제국보다 먼저 아시아를 제패해야한다는 논리다. 아시아는 협동의 대상이 아니라 침략의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서양제국으로부터 소외되고 국제무대에서 고립되면서 일본은 다시 아시아의 일원을 강조하며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었다. 동생공사의 운명공동체론과 백인종에 대한 황인종의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대동아 공영의 사상을 미화했고 분식했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한동안 다시 아시아와 단결하고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미국의 지도를 충실히 받으면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유럽의 선진공업국가나 미국과의 경제적 마찰이 점차 심화되면서 일본의 주요관심은 다시 아시아로 회귀하는 연상을 나타났다. 『아시아합중국논』을 제창할 만큼 그들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향상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아시아관은 그 어느 하나도 선린의 뜻을 근거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속아논자는 동종동문 운명공동체 또는 아시아 공동의 번영을 수식어로 사용했으나 실은 아시아 민족의 단결을 방파제로 하여 일본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연대라는 이름으로 인접국가의 희생을 강요했으며, 탈아논자는 침략을 통한 아시아 지배의 논리를 전개였다.
그러므로 속아를 강조하든 탈아를 주장하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과 추구하는 목표는 일본의 만세독립과 영광을 위하여 아시아를 지배해야한다는 것이다. 속아와 탈아는 다만 이 목적과 대전제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수단은 항상 가변적이고 수식적일 수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연대주의자가 오늘 침략주의자로 둔갑하고, 오늘의 탈아논자가 내일 속아논자로 변신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들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일본의 발전과 아시아 지배라는 목적에 있는 것이지 연대나 침략이라는 수단적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으로 하여금 불행한 역사를 만들게 하기도 한 것이다.
한상일
▲1943년 서울출생 ▲고려대법대 졸 ▲미 클레아먼트 대학원졸(정치학 박사) ▲현 국민대 교수(일본 정치학) ▲저서 『일본 군국주의의 형성과정』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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