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선생님·프로게이머 장래 직업 연기로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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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임 배우 오지용씨(왼쪽에서 두번째)가 진행하는 직업체험 수업에서 인천 부평동중 1학년 학생들이 ‘가수’라는 직업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오늘은 ‘무궁화꽃이 ○○입니다’ 게임을 해봅시다. 직업에 대한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면 돼요.”

 지난 4일 오후 2시 인천 부평동중 1학년 6반 교실. 방한 모자에 후드티를 입은 마임 배우 오지용씨가 ‘자신의 직업 찾기’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2학기부터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는 이 학교는 오씨를 외부 강사로 초빙했다. 책상을 구석으로 밀어낸 교실에서 학생들이 오씨와 마주보고 섰다. 김기영(13)군이 앞으로 나가 “무궁화꽃이 ‘가수’입니다”라고 외친 뒤 뒤를 돌아보자 진풍경이 펼쳐졌다. 나머지 학생들이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동작, 팬에게 둘러싸인 모습 등을 개성있게 표현한 것이다. 허건(13)군은 “한 친구가 ‘선생님’을 외치자 대부분 친구들이 혼내는 모습을 흉내냈지만 한 친구는 제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모습을 연기하더라”며 “연극을 해보면서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씨는 “교과서에 나오거나 부모가 원하는 직업은 제한돼 있지만 이런 수업을 해보면 가수, 프로게이머, 축구선수처럼 또래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4반 교실에선 6~7명씩 모둠으로 나눠 앉은 학생들이 ‘연극을 통한 꿈 찾기’ 수업에 참여했다. 학생이 원하는 직업, 부모가 원하는 직업 등을 메모에 적어 칠판에 붙였다. 한 모둠 학생들은 이 중 의사, 프로그래머, 돈, 야구, 게임 등을 떼어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제로 연극 대본을 만들었다. 김현성(13)군은 “친구들과 대본을 짜다 보니 그동안 직업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좁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교육부·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개발한 ‘학교진로교육프로그램(SCEP)’을 시행 중이다. 체험학습 위주의 진로탐색 교육을 하면서 매주 목요일 모의창업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학생들이 가상 국가를 건설하고 어떤 제품을 만들어 개업할 지 아이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이 학교 유덕주 연구부장은 “학생 스스로 원하는 직업을 찾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일터를 찾아가는 직업 체험은 자유학기제 진로교육의 또 다른 축이다. 서울 연희중 1학년 학생들은 올해 두 차례 일터 체험을 다녀왔다. 4~5명씩 희망하는 곳에서 해당 직업인의 일과를 동행한다. 건축사무소·도서관·법원·로펌·병원·경찰서·제조업체·은행·방송·미용실·제과점·상점 등 40가지 100여 곳의 체험 장소를 교사들이 발굴했다.

 지난 9월 선유석(13)군은 가산디지털단지의 가스노출감지기 전자회사를 방문했다. 회사와 제품 설명을 들은 뒤 엔지니어들과 함께 장비 정비, 아이디어 회의 등을 함께 해봤다. 업체 직원과 함께 가정을 방문해 직접 감지기를 점검하기도 했다. 선군은 “사람에게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는 직업이 얼마나 보람 있는 지 깨달았다. 나중에 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체험에 나서기 전에 해당 직업에 대해 알아보는 사전교육을 진행하고 체험 뒤엔 소감을 정리하는 사후교육을 한다. 이 학교 황유진 연구부장은 “직업인 인터뷰를 위한 사전 조사 내용을 기록할 수 있고 체험 후 사진과 함께 느낀점을 적을 수 있는 책자를 학생들에게 제공해 체험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번거롭다며 학생 방문을 꺼리는 곳도 있었다”며 “하지만 막상 중학생들을 상대로 진로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나면 ‘보람이 있다. 다음에도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청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여성복 매장에서 직업 체험을 해본 전지우(13)양은 “처음엔 ‘예쁜 옷을 판다’고 마냥 좋았지만 실제론 목소리와 표정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이런 체험 기회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가 위치한 지역적 여건에 따라선 직업체험을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 대도시에 비해 지방 학교들이 특히 이런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진로탐색 프로그램이 정착하려면 학교뿐 아니라 학부모·지역사회·기업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학교가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게 교육 당국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천인성·김기환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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