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사장 한마디에 출발 지연시킨 대한항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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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오는 ‘램프 리턴’은 간혹 있다. 항공기 운항 규정상 기체 결함으로 정비가 필요하거나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인 없는 짐을 발견했을 때 다. 주인 없는 짐은 폭발물을 의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운항 안전과 관련된 경우에만 램프 리턴을 하게 돼 있 다.

 한데 대한항공은 견과류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조현아 부사장의 호통으로 램프 리턴을 강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다. 조 부사장은 뉴욕 JFK공항에서 비행기가 활주로로 향하던 중 승무원이 매뉴얼대로 견과류 서비스를 하지 않는 데 호통을 치며, 사무장을 내리도록 명령하면서 비행기가 기수를 돌려 다시 게이트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에 250여 명의 승객이 탑승한 비행기의 연착은 물론 활주로의 다른 항공기에도 폐를 끼쳤다.

 조 부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로 오너 가족 임원이다. 현재 기내 서비스 부문 등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기내 서비스 수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내 문제인 만큼 내부적으로 해결할 일이다. 부사장이라 해도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는 승객이며, 승객은 기장과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이는 안전운항을 위한 기본 수칙이다. 또 활주로에선 기장이 승무원 지휘·감독을 비롯한 운항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한데 대한항공에 따르면 기장은 이유도 묻지않고 대뜸 기수를 돌렸다는 것이다. 또 기내 서비스를 총괄해야 하는 사무장도 없는 상태에서 운항했다. 승객들은 영문도 모르고 연착과 서비스 부실의 피해를 당해야 했다. 항공 운항의 기본 수칙도 안 지키는 임원과 그런 임원 눈치 보느라 승객을 우습게 아는 기장이 존재하는 대한항공. 이게 대한항공의 현주소라면 소비자로서 이런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관련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더 이상 내부 문제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무거운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