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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협정, 베트남전 외교문서 공개] 새롭게 드러난 베트남전 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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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교부가 공개한 1965~73년 당시 베트남전 관련 문서에서도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우선 냉전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하기로 한 부분이 눈에 띈다. 또 ▶미국에 공작원 북파를 제의한 것 ▶주일 기지를 제주도에 유치하겠다고 제의한 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베트남전 수행 과정에서의 외교문서와 미 측의 경제지원이 담긴 브라운각서의 이행 실적도 공개됐다. 공개된 문서는 49권 7400쪽 분량이다.

◆ 전후 대공산권 외교=동서 냉전이 한창임에도 정부는 월남전 종료 뒤 중.소 관계 개선 계획을 세운다. 73년 1월 '월남 종전 대비책'이란 보고서는 "중공 및 소련과는 비정치 분야부터 가능한 관계 수립을 모색함으로써 이들과 점진적으로 관계를 완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담았다. 또 한국군과 싸웠던 월맹을 사실상 승인하는 일련의 조치를 조심스럽게 취하면서 적대 감정을 점차 해소시키도록 노력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 북한에 공작원 밀파=한국은 68년 5월 27일 워싱턴의 1차 한.미 국방각료회의에서 대북 공작원 침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한국군의 대북 정보 수집력이 취약하다"며 "현재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는 해야 할지 모른다"라고 했다. 최 장관은 "내가 헌병사령관 당시 첩자를 보낸 일도 있고 사진도 찍은 일이 있으니 또다시 북한에 첩자를 보내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미 측 휠러 장군은 "대북 침투는 정보 수집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동의했다. 국방부는 51~94년 1만3000여 명의 북파 공작원을 양성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 주일 미군기지 제주도 유치=회의에서 한국은 주일 미군기지 제주도 유치도 타진했다. 최 장관은 "일본이 미군기지 철거를 요청하는데 한국에 이전하는 것을 전적으로 환영한다"면서 "필요한 토지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닛즈 미 국방차관은 "(이전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이어서 간단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측은 이듬해 6월 서울서 열린 2차 회의에서 구체화했다. 최 장관의 후임인 임충식 국방부 장관은 "제주도에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를 만들어 줄 것을 제의한다"고 정식 요구했다. 제주도에는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사용한 공군기지와 탄약고 등이 방치돼 있었다.

◆ '김치가 좋아'=박정희 대통령은 67년 3월 8일 존슨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김치만이라도 하루바삐 월남에 있는 우리 군인이 먹을 수 있게 하면 사기가 훨씬 앙양될 것으로 믿는다"고 부탁했다. 박 대통령은 친서에서 "만일 월남에 있는 한국군에게 한국 음식의 야전식량을 공급하게 된다면 사기와 전투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각하께서 이 특별한 사정을 양찰하시어 특별한 관심과 조치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일권 총리는 러스크 미 국무장관과 맥나마라 국방장관 등과의 회담장에서 김치 시레이션 공급 문제를 언급, 같은 달 17일 박 대통령에게 "김치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미 국방장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편 미 상원 사이밍턴 청문회 내용과 브라운각서의 실적현황 보고서도 나왔다. 사이밍턴 청문회는 70년 2월 미 상원이 베트남 파병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 실태를 점검한 회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69년 미국이 한국에 지원키로 한 군사.경제 16개 항 중 절반이 100% 이행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 지원에 따라) 50억 달러의 외화 가득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문회에선 미 핵무기 한국 저장 문제도 나왔다. 포터 주한 미 대사는 "미국이 필요로 한다면 저장을 허용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말한 바 있다"고 밝혔다.

끈질기게 제기된 '파월 장병에 대한 수당이 모두 지급되지 않았다'는 의혹과 관련, 국방부는 공개된 문서를 근거로 "미국과 합의한 대로 지급했으며 당시 장병들의 수첩에 기재된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베트남전에 파병된 병장은 하루에 1달러80센트의 수당을, 소장은 8달러를 받았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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