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못 찾은 돈 여전히 "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돈의 흐름을 크게 바꿔 놓은 실명제는 사실상 실시가 연기됐다. 그러나 한번 실명제에 놀라고 저금리로 은행을 빠져 나온 돈은 좀처럼 제갈 길을 못 가고 있다. 당국의 강력한 단속 때문에 부동산투기는 일단 주춤해지고 증시는 다소 활기를 찾았으나 돈의 대기상태는 여전하다. 금, 암달러, 집 값 등은 여전히 오른 상태다. 실명제실시 연기결정 후 경제의 흐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부문별로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은행·단자>
실명제실시 연기가 굳어진 후 10일 남짓 동안의 예금동향을 놓고 새로운 추세를 짚어 내기는 힘들다. 적어도 한두 달간의 동향을 꾸준히 지켜봐야 하지만 실명제연기 이후 은행예금의 증가세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반면 단자 등 제2금융권의 수신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만은 뚜렷한 현상이다.
또 새로 늘어난 은행예금 중 50%이상이 언제라도 은행을 빠져나갈 수 있는 요구 불 예금이고 안정된 저축성 예금은 45% 안팎에 불과해 자금의 대기성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결국 실명제 연기 이후 시중 부동자금은 이제까지의「불안」을 씻고 새로운 갈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이「단기·고금리」의 매력을 쫓아 제2금융권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또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사채거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달 들어 지난 10일까지 각 은행의 예금증가 액은 모두 5백23억 원.
이중 요구 불 예금은 2백80억 원, 저축성예금은 2백23억 원이었다.
이처럼 요구 불 예금증가가 저축성예금의 증가를 앞지르는 현상은 지난 6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9월의 경우 한달 동안의 총 예금증가 액 약 7천억 원 중 5천억 원이 저축성예금이었고 2천억 원 만이 요구 불 예금이었다.
반면 제2금융권으로의 자금유인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나 지난 13일 현재 단자·종금사들의 수신잔고는 모두 3조2천8백억 원 수준으로 지난달 말에 비해 2주일 새 1천억 원이 늘어 이·장 사건 직전의 수준을 단숨에 회복했다. 지난 5월 이후 7월말까지 단자 사들의 총 수신이 매달 1천억 원 이상씩 빠져나가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6·28이후 약 5개월 째 계속되고 있는 저금리 속에서 자금에 대한 수요는 계속 불어 특히 열반가계의 소액대출신청이 각 은행창구에 몰려들고 있다.
민간신용은 9월의 7천82억 원에 이어 10월중에는 4천8백95억 원이 새로 대출돼 9, 10월 두 달 동안 지난해보다 총 대출규모가 18%나 늘어났지만 자금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낮은 금리가 불러오는 자금에 대한 가수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