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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9)-제79화 육사졸업생들(12) 장창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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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제는 만주를 점령하고 이를 중국에서 분리 독립시켜 만주국을 세우면서 수도를 장춘으로 정하고 그 이름을 신경으로 바꾸었다.
신경에는 만주군 총사령부와 관동군사령부(일본군)·만주 군관학교 등이 있어 자연히 우리 한인들도 많이 모이게 됐다.
그때 신경지구 한교교민회장은 큰 재산가인 강윤철선생이었다. 강문봉장군의 아버지인 그는 동만은행의 창설을 비롯하여 신경산업·동만림업·간도인쇄 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했고 정미업체인 돈화산업도 차려 곡창 만주의 농산물을 처리, 큰돈을 벌었다. 강선생은 또 당시 형식적이긴 하나 의회격인 만주협화회의 한인 대의원 3명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집은 당시 신경에 와있던 조선인 관리·군인들의 집결소였었다. 특히 엄격한 규율속에서 영내생활을 하고 있던 무관학교 생도들은 외출날이면 그 집에 몰려가서 음식과 술을 대접받으며 하루를 지내기가 일쑤였다.
박정희생도는 그 때도 술을 좋아했다. 특히 좋아하는 술은 정종이었다. 그래서 강윤철선생은 꼭 정종을 준비해 두었다가 박정희생도가 외출나오면 대접하곤 했다는 것이다. 강문봉장군이 군에 들어가기 전 중학교 학생 때의 일이었다.
당시 정일권장군은 술을 못했지만 장교들에게는 매주 술 배급표가 나왔다. 박정희생도가 이것을 알고 『정선배 술 티킷은 딴데 흘리지 말고 내게 양도하시오』하여 정장군은 술표를 꼭 보관했다가 주곤 했다고 한다. 대한노인회 전회장인 이규동장군(육사2기·준장)은 그 때 정일권장군과 같은 부대에서 경리관으로 있었고 그의 동생인 이규성씨는 회사에 취직해 있었으며 막내동생인 이규광장군(3기·준장)은 신경 입정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규성·이규광 양씨도 전쟁말기에 군대에 끌려나가게 됐다.
원용덕장군(군영·만군중좌)은 현지임관된 군의관이었다. 그러나 일반특과 장교와는 달리 성격은 남달리 대담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대령급이상 장군들까지 참석한 모임에서 일본인장교가 조선인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자 차고있던 칼을 빼들고 대결하자고 대들어 일본인들이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일본헌병대가 시내에 비상을 걸었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동이었다는 것이다.
윤태일장군 (육사7기·만군중위) 도 비슷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그가 만주 동부의 길림지구 공범대에 배치되어 있을 때 어느 날 일본인 장교들이 역시 조선인을 모독한 적이 있었다. 분개한 윤장군이 칼을 빼어들고 일본의 나쁜 놈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면서 도망치는 일본인들을 쫓아다녔다. 헌병들이 놀라 달려와서 싹싹 빌며 말린 후에야 칼을 다시 꽂고 물러섰다는 얘기다.
만군계 군인 중에 좌경한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소련·중공지역에 인접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유명한 사람이 해방 후 여운형계의 사절군사단체를 조직했던 최승환중위다. 그는 만군의 항공대를 창설한 에이스급 파일리트로서 만주의 제트전투기 편대를 이끌고 일본에 항공대창설시위 축하원정 비행을 한 탁월한 항공지휘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정일권대위를 찾아왔다. 조선의 장래를 위해서는 모택동과 손을 잡아야 한다면서 당시중공의 근거지였던 연안에 다녀오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은 선배를 진실로 믿고 실토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 같은 공산주의 내통분자를 당장 체포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정대위는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일본헌병대 배치도와 함께 연안까지의 교통로까지 그려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중위였던 최방환은 무사히 연안에 도착, 그들과 접선하여 공작임무까지 받아 가지고 돌아와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좌익부대를 창설했다. 그러나 미군이 진주하고 남한의 정치체제가 우익으로 정착되어가자 평양으로 갔다가 얼마 후 숙청,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미망인은 지금 마산에 살고 있다.
그밖에도 만군계에는 좌익분자가 많아 여순반란사건 후 숙군때 처형된 주요인물만 보아도 당시 6여단참모장 최남근중령 (만군중위) 여만군수참모 이상진소령 (만군2기·중위) 이병주소령(만군2기·중위) 오규범중령 (중위)길안영소령 (만군2기) 황택림 (만군5기·육사2기) 김학림소령 (만군6기·육사1기)등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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