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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벽돌문화 속의 개성 (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현대문명 속에서의 놀이의 의미를 물어 온 건축가 K씨에게-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 신속성보다는 오히려 그 공간성에 대하여 놀라게 됩니다. 비행기 속을 둘러보면 한 구석도 무용한 공간이라곤 없읍니다. 천장은 담요를 넣어두거나 짐을 넣어두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의자 밑은 구명대와 산소마스크를 넣어두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읍니다.
의자의 등은 식탁이 되고 팔걸이는 담배 재떨이와 라디오의 다이얼이 달려있는 사이드 테이블이 됩니다.
최소의 공간 속에 최대의 기능을 담고 있는 비행기 칸의 공간이야말로 인간공학의 빛나는 승리가 아닐 수 없읍니다.
그냥 버려진 공간은 그야말로 『약에 쓰려해도』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안의 화장실 말입니다. 그것을 보면 우주인이라도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몸이 겨우 움직일만한 최소한의 공간 속에 최대한의 기능을 살리고있는 비행기 칸의 화장실이야말로 우주선과 같은 캡슐문화의 패턴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비행기 속의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지구의 내일의 운명을 담고있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현대문명이 인간의 생활공간을 최대한으로 기능화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옥수수밭 처럼 나날이 늘어서고 있는 아파트 안을 한번 들여다 보는 것 만으로 족할 것입니다.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은 숨바꼭질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이들의 유행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행크·에런」이나 혹은 「펠레」가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다는 그만한 이유만으로 숨바꼭질의 놀이가 없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숨바꼭질의 놀이를 모르는 아파트 아이들의 생활풍습을 그것만으로 증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의 생활공간에는 숨을 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행기 칸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공간에는 한 뼘의 헛된 공간, 한치의 버려진 공간이라곤 없습니다. 철저히 꾸며지고 철저히 기능화한 그 생활공간에는 옛날의 시골집과 같은 어설픈 공간, 장독대라든가 뒤꼍이나 헛간이라든가 마루 밑이나 다락 구석이라든가 하는 어수룩한 공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용하게 버려진 공간, 그리고 의외성을 지닌 비합리의 공간이 있었을 때만이 그곳에 아이들이 숨을 곳을 발견할 수 있고 숨바꼭질의 놀이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으로부터 비 일상적인 공간을 향해 도망해 나가려는 욕망의 꿈을 나타내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도 그런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광이나 다락속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발견했을 때의 그 가벼운 흥분 말입니다. 이미 못쓰게된 나사못이나 이상한 딱지가 붙어있는 빈 병들, 겉장이 뜯어져나간 퇴색한 책들, 다리가 부러진 의자와 고장난 연장들. 그것은 무용한 것들이기 때문에, 생활공간에서 멀리멀리 잊혀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장난감처럼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무용한 곳에서 무용한 사물과 만나는 것, 거기서 진짜놀이가 생겨나는 것이죠. 누웠다가 일어나는 자리 밥 먹는 자리, 옷을 벗고 입고 양치질을 하고 공부를 하는 그 생활의 자리, 그런 일상의 자리로부터 자기의 몸을 감출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낸다는 것은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콜룸부스」 의 놀라운 힘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아직 아무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키는 더 자라날수 있고 두 다리는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그것을 상실해 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전체가, 세계전체가, 그 놀이의 공간을 상실해 가고 있읍니다. 옛날의 길은 그 자체가 일종의 놀이의 공간을 함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유연한 곡선을 그려가며 꾸불꾸불 뻗어가고 있는 길은 기능을 거부한 놀이의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죠. 그것이 이제는 고속도로의 직선으로 바뀌어 가면서 거기에서는 사람이 멈추어 설 수도 없고 주저앉아 쉴 수도 없으며 걸어다닐 수도 없는 공간으로 바뀌게된 것입니다.
고속도로는 기능주의의 길입니다.
도로표지판에는 속도표시와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만이 적혀 있습니다. 오로지 반드시 목표만을 향해서 최단거리로 달려가라고 외칩니다. 오직 기능주의 외에는 일체의 다른 목적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고속도로는 넓은 길이지만 그것은 시골의 오솔길 보다도 더 좁은 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의미가 단순한 까닭입니다.
놀이의 공간, 말하자면 무용의 공간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단 고속도로나 아파트뿐이 아닙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고 소리치면서 놀던 아이들의 그 숨바꼭질의 노랫소리가 사라져가고 있읍니다.
집안에서, 도시에서, 모든 문화의 책갈피 속에서 숨바꼭질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점보제트의 캡슐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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