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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의 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자리 물가시대」에 4천5백만원의 프리미엄이 생긴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통화범람, 인플레기대감, 정책의 맹점, 교묘한 투기조작 등이 빚어낸 돌연변이라 할 수 있다.
돌연이변 뒤엔 투기사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방대한 조직과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동원, 부동산값을 만들어 낸다. 복부인과 복덕방이 바로 이부동산의 마법사들이다.
이들은 천의 수법으로 채 짓지도 않은 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기도 하고 갈대밭을 금싸라기 땅으로 만들기도 한다.
최근 개포지역의 투기가 연일 보도되자 이 지역에서 영업을 하고있는 부동산소개소들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다.
실제 프리미엄을 올리고 재미 본 복덕방과 복부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엉뚱하게 자기들이 투기의 주역인 것처럼 알려져 재미도 못보고 억울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 투기조성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조막손이다. 진짜투기를 조장하고 한목 챙긴 큰손 복덕방은 다른데 있다. 이곳에 출동한 복부인도 작은 손이다. 진짜 복부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무대에 나서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 조종만 했다.
부동산소개업계에서는 이번 개포투기의 주역이 서초·압구정동·여의도의 큰손 복덕방과 이들의 스폰서인 거물 복부인들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바로 압구정동의 현대·한양아파트와 여의도·서초동의 아파트·땅값을 부쩍 올려놓은 주역이며 78년 대 투기극의 「바로 그들」이라고 한다.
이 큰손 복덕방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다닥다닥 붙은 한 두평 짜리와는 다르다. 우선 사무실이 수십 평되고 사원이 50여명이나 되며 시내 곳곳에 지점복덕방도 두고 있다. 자체자금이 상당하고 자금동원능력도 기 십억이나 돼 주식회사와 다를 바 없다.
사원들은 대체로 20∼30대 초반의 미남들로 대부분 대학졸업자. 화술이 뛰어나 웬만큼 말 잘하는 부인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들과 짝을 이루는 큰손 복부인들은 누구인가. 그러나 복부인들은 얼굴이 없다. 다만 나도는 이야기로는 변호사·의사·회사사장·은행간부부인들이고 텔런트도 있다고 한다. 78년에는 고급공무원부인이 끼어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특히 증권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일부 끼어 들었다고도 한다.
이 큰손의 부동산 마법사들이 현장밖에 앉아 프리미엄 올리기 작전에 써먹은 마술이 민영통장 매점매석과 통장 돌려치기다.
예를 들어 A라는 복덕방사장이 B라는 단골복부인을 찾아갔다. A는 한달 뒤에 인기 있는 W건설 아파트가 분양될 예정인데 지금 당첨이 분명한 0순위통장의 프리미엄이 5백만원이지만 이것을 한30장 거둬들이면 1주일 뒤 7백만원, 2주일 뒤는 1천만원, 3주일 뒤에는 1천5백만원이 될 것이라고 브리핑한다. 그러자 B는 금고를 열어 통장 값 포함 3억원을 내주고「거둬들이라」고 한다.
A는 다시 C와 D라는 복부인을 찾아가 마찬가지로 권유, 통장을 사도록 한다. 이쯤 되면 조막손 복덕방에서 나돌던 통장은 몇 사람에게 매점되고 이들이 부르는 값에 따라 팔려 나간다. 매점했던 통장으로 로열박스에 당첨되면 당첨 안됐거나 나쁜 위치에 당첨된 통장의 손해분까지 보충하기 위해 엄청난 값을 부른다. 이것이 곧 3천만원이다, 4천만원이다 하는 아파트의 프리미엄시세가 된다. 거래가격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큰 손 복부인을 여럿 잡고있지 못한 복덕방은 다른 복덕방과 담합해 몇 명의 복부인을 묶어 매점한다.
일이 계획대로 잘 되면 심부름 값으로 복덕방에는 이익의 3∼4할이 떨어진다. 아무리 못해도 2할이다.
복부인중에는 직접 복덕방을 상대하지 않고 심복을 두세명 두고 이들로 하여금 일을 보도록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복부인들은 대부분 4∼5명이 그룹을 만들어 투기를 하며 다른 그룹과 공동작전을 펴기도 한다.
돌려치기는 복덕방과 복부인들이 통장이나 아파트를 계속 전매시켜 값을 올리면서 차액을 따먹는 수법이다.
A라는 복덕방이 B· C·D…라는 복부인을 줄줄이 엮어 좋은 물건이라며 사기를 권유하고 사고 나면 곧 프리미엄을 얹어 다른 사람에게 팔게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복덕방이 여러 명의 복부인을 확보하는데 좋고 전매 때마다 돈이 떨어져 좋다. 복덕방 중에는 다른 복덕방과 연락을 가지면서 서로 매물을 돌려가며 돌려치기하고 급하면 꾸기도, 꾸어주기도 한다.
복부인들끼리 돌려치기하는 경우도 있다.
돌려치기는 78년 투기 때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작은 복덕방에서 많이 써먹는다. 경기가 없을 때 값을 올리는데, 한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서 잘 써먹는다. 돌려치기를 한참동안 하면 실제는 형편없는 매물이 굉장한 인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해 부동산의 초보자가 빠지기 쉽다. 잔뜩 오른 값에 사놓고 보면 투기꾼이 빠지면서 값이 뚝 떨어지는 이른바 「막차 태우기」수법이다.
이밖에도 복덕방과 복부언이 짜고하는 수법은 다양하다. 가공인물을 세워 거래를 조작하기도 하고 아예 아파트 청약 계를 만들어 투기를 한다. 눈독들인 지역에 자기들끼리 꼭둑각시 복덕방을 만들어 붐을 가장해 헛소문을 터뜨리고 떨어지는 아파트 값도 올려놓는다.
이처럼 복부인과 복덕방은. 부동산투기의 동업자이며 앞뒷 바퀴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만으로 제구실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진짜 투기사는 깊숙히 숨어있다. 아무도 모르게 정체를 숨기고 투기극의 연출만 하는 것이다.

<신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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