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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배용준·손예진 주연, 허진호 연출…'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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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랑이라고 다 달콤한 것은 아닌가 보다. 아시아 각국 취재진의 뜨거운 관심 속에 23일 첫 공개된 허진호 감독의 '외출'(9월8일 개봉)은 영화 전반부의 황량한 겨울벌판처럼 푸석하고 메마르다. 어쩌면 이 사랑이 원래 그런 운명인지도 모른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서로의 배우자들이 불륜관계였음을 알게 된 두 남녀 인수(배용준)와 서영(손예진)은 복수심 반 동병상련 반으로 서로에게 끌린다. 앞서 두 배우자의 불륜은 디지털 카메라에 남은 동영상처럼 혹 달콤했을지 몰라도, 그 불륜을 복기(復棋)하는 나중 두 사람의 사랑은 관객에게 여간해서는 달콤한 순간을 맛보게 하지 않는다.

# 불륜일까 로맨스일까=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이 사랑이 씁쓸한 이유를 "너무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찾는다. 감독의 전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나'봄날은 간다'의 사랑처럼 "일상에서 차곡차곡 쌓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작에서처럼 사랑이 올 때의 설렘도, 뒤돌아나갈 때의 설움도 가슴 저릿하게 느끼기 힘들다. 간병을 위해 같은 여관에 장기투숙하면서 빈번하게 마주친 두 사람은 점차 배우자에게 배신당한 공통의 고통을 나누기 시작하고, 서영이 술기운에 던진 "우리 사귈래요. 두 사람 깨어나면 기절하게"라는 말은 어느 순간 행동이 된다. 하지만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속설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작정하고 호텔로 나란히 걸어들어가 몸을 섞는 두 남녀의 모습은 또다른 불륜일 따름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신뢰를 저버리며 배우자들이 겪었을지도 모를 혼란스런 감정을 고스란히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는 뭘까 묻고 싶었다"는 감독은 이 이해의 과정을 느리게 진행시켜 나간다.

# 사라진 일상, 안 보이는 내면=영화에는 그 흔한 친지나 직장동료의 병문안 장면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인간관계를 철저히 배제하고 인수와 서영의 감정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두 집안의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인수의 장인이 등장하는 것도 인수와 서영의 밀애가 발각될 뻔한 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신 영화는 의도적으로 두 배우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보여주는 장면을 즐겨 쓴다. 하지만 대사를 절제한 클로즈업 화면 위주의 전개가 두 사람이 겪는 복잡미묘한 내면의 변화를 충분히 전달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영화의 시선은 어쩌면 둘의 사랑에 관객이 공감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둘의 관계를 "이중적인 시선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여느 사랑처럼 아름답게 그려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둘의 사랑을 너그러이 용인하기도 어렵다는 관점이다.

# 사랑일까 아닐까 =감독의 이런 이중적인 시선을 반영하듯,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영상이 마치 인수와 서영의 분신처럼 곧잘 등장한다. 거울 안과 밖의 두 모습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그 결과로 해피엔딩을 쉽게 기대하기 힘든 이중적 상황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감독은 "나 자신도 그런 의문을 갖고 영화를 찍었다"고 말한다. 결말은 이 상황을 미묘하게 봉합한다. 영어제목 '4월의 눈'(April Snow)처럼 서영이 좋아하는 봄날에 인수가 좋아하는 눈이 내리는 이상한 날씨가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는 것이다. 눈밭 속을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서영이 묻는다. "우리, 어디로 가죠"라고. 관객 역시 비슷한 물음을 하지 않을까.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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