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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유진·배우 양동근이 말하는 영화 '와일드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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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은 분명 다르겠지만 양동근(24)처럼 그 차이가 확연한 배우도 드물 것 같다. 16일 개봉하는 형사극 '와일드 카드'에서 끓어넘치는 에너지를 표출했던 그가 정말 그일까 싶다. 말을 건네도 반응이 별로 없다. 심드렁하다.

대답도 거의 단답형이다. "이번 작업이 어땠느냐"고 질문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했어요. 설명할 필요가 없죠"라는 식이다.

"어떤 재미냐"고 캐물으니 "너무 복잡하네요. 그만큼 어휘력이 풍부하지 않아요. 이런 재미, 저런 재미, 다 있죠"라며 짧게 끊는다. 적당히 둘러치는 요령이 없다. 영화를 영화로 보면 되지 굳이 배우의 말을 들을 이유가 있느냐고 되묻는 듯하다.

김유진(53)감독은 익숙한 표정이다. "촬영장에서도 말이 거의 없었어요. 머리 속이 궁금할 정도였죠. 그런데 편한 측면도 있었어요. 이래라, 저래라 하기 전에 자기가 알아서 다 하거든요. 장면 하나 하나를 끙끙대며 연구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지금까지 수많은 배우를 보았지만 동근이처럼 연기 몸살을 앓는 경우는 없었어요. 대단한 노력파인 거죠. 오죽하면 '네가 감독해라'고까지 했겠어요."

양동근이 계면쩍은 모양이다. "감독님, 칭찬 좀 그만하세요. 목이 뻣뻣해질까 걱정이네요." 그러자 동네 아저씨처럼 포근한 인상의 감독이 "내 딸이 너와 동갑이다. 이번 캐스팅 조건 1순위가 뭔지 아니. 범죄자보다 못 생겨서 누가 범죄자인지 모를 정도의 얼굴이었지. 이목구비를 따진 게 아니야. 다행히 네 재능과 노력 덕에 영화가 완성됐지만 말이야"라며 크게 웃었다.

'와일드 카드'는 일명 퍽치기(행인을 때려 기절시킨 뒤 금품을 빼앗는 행위) 4인조를 검거하는 경찰의 애환을 그린 정통 형사극이다.

전국 3백50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약속'의 김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노련한 50대 감독과 양동근.정진영.김명국.기주봉 등 연기파 배우가 만나 튼실한 작품을 빚어냈다.

양동근은 소심한 선배 형사에게 욱하고 달려들고, 잔인무도한 흉악범에 비분강개하는 강력계 형사 방제수를 맡았다. 사리가 분명한 선배 오영달(정진영)과 한조를 이뤄 '대한민국 형사'의 일상을 보여준다. '차두리보다 빠른' 범인들보다 달리기는 못하나 '그들은 뛰어야 벼룩'이라고 믿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다.

그의 히트작인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순수한 이미지에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에 좌절하는 신참 형사의 성난 얼굴을 겹쳐놓았다. 때론 용의자를 난폭하게 대하면서도, 때론 그들을 어린애처럼 달래는 강력계 형사의 앞과 뒤를 매끈하게 소화했다.

사실 형사는 영화의 단골 소재다. 그렇다면 이번 영화의 새로움은? 양동근에게 대놓고 물었다. 숨을 고르던 그가 어렵게 입을 뗐다. "캐릭터나 줄거리나 영화적 과장이 없어요. 대단히 사실적인 영화죠. 일단 비리 형사, 괴짜 형사, 혹은 진짜 더럽게 나쁜 형사가 없습니다. 주위에서 마주치는 그런 형사들 얘기죠."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공공의 적' 등 기존의 형사에서 벗어나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러 각도로 고민하다가 형사의 일상을 보여주자고 결정했죠. 영화 내용은 1백% 현장 취재의 결과"라고 말했다.

예컨대 영화에 묘사된 범인들의 각종 잔혹한 수법이 결코 과장이 아니며, 오히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하다는 것. 표현 수위 조절에 항상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2년 전 조폭영화가 주류를 이뤘죠. 고등학생들이 '목표 깡패'를 외쳐대기도 했어요. '약속'에도 조폭이 나오긴 하지만 이번엔 거꾸로 가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뭐랄까, 좀더 긍정적으로, '목표 형사'를 표방했다고나 할까요."

'와일드 카드'에는 대중영화의 ABC가 고루 담겨 있다. 오직 돈 때문에 살인을 일삼는 퍽치기 일당의 무신경에 몸이 얼어붙는가 하면, '퍽치기의 god'로 통했던 안마시술소 대표 도상춘(이도경) 등 코믹 캐릭터에 폭소가 터진다. 주.조연의 역할을 적절히 배분하며 긴장과 이완, 조임과 풀림의 역학을 교과서처럼 사용했다.

양동근도 성장했다. "그냥 시나리오대로 연기했다.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고 말했으나 그의 출연작(이번까지 총 일곱편) 중 단연 눈에 띈다. 실질적 주연도 처음이다. "생각할 게 많아졌다. 골치가 많이 아팠다"는 게 그의 촌평. 배우로 성숙했는지는 자신없으나 나이 많은 감독. 배우와 일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감독이 "연기와 음악을 갖고 노는 것 빼고 다른 관심이 없죠. 하여튼 꾸밈, 혹은 가식이 없는 건 확실해요"라고 거든다. 자상한 감독과 썰렁한 배우의 기묘한 만남이다.

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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