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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선 '3대 불가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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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도쿄 총국장

꽤 오랫동안 일본 정치를 지켜봐 왔지만 오는 14일 치러지는 총선만큼 희한한 선거도 없다.

 “소비세를 올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올리는 걸 미루겠다”는 걸 국회 해산의 명분으로 삼은 것부터 희극이었다. 하지만 법률에 ‘총리 전권사항’으로 돼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도무지 ‘이해 불능’의 여야, 그리고 일본 유권자다. 개인적으로 ‘3대 불가사의’라 명명하고 싶다.

 첫째는 ‘자포자기 야당’. 총선은 정권을 선택하는 선거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 민주당은 전체 295개 선거구 중 178곳밖에 후보를 내지 못했다.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전체 의석 475석 중 후보는 198명. 41%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민주당 정권’을 포기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선거에선 ‘정권교체’란 구호가 아예 사라졌다. 아예 가이에다 반리(海江田萬里) 민주당 대표는 “이번 선거는 다음번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선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한국 야당 같았으면 당일로 바로 ‘모가지’감이다. 1998년 창당해 한때 정권까지 잡았던 야당이 지난 총선 패배 후 만 2년이나 지났는데 선거구에 제대로 후보조차 내지 못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마디로 야당 자격상실이다.

 둘째는 ‘묻지마 여당’. 2일 TV에선 황당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이날 시작된 선거전에 임하는 주요 후보의 모습이었다. 그중 당당하게 기세를 올리는 한 여성. 오부치 유코(小淵優子) 전 경제산업상이었다. 한 달여 전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정치판을 뒤흔들어 놓다 각료를 사임했던 그다.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그런데 자민당은 슬그머니 그를 공천했다. “어쩔 건데?”란 오만함이 묻어나온다. 물론 그가 친한파 의원이긴 하지만 비정상의 극치다. 또 하나. 자민당 의원 295명 중 ‘공천 물갈이’된 이는 단 5명. 1.7%다. 그나마 5명 중 4명은 비례대표였다. 선거구 출마후보 교체는 딱 1명이다. 세상이 팽팽 돌고 유권자 요구가 다양해져도 꿈쩍 안 한다. 이유가 따로 없다. “묻지 마”다. 정치에 변화가 없으니 사회도 지친다.

 마지막은 ‘나 몰라 국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결같이 아베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목소리가 더 많다.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런데도 “어딜 찍겠느냐”고 물으면 자민당을 찍는단다. 놀라운 통계가 있다. 최근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원전 정책 등에 반대하는 응답자도 ‘찍을 정당’ 1위로는 자민당을 꼽았다. 여당이 싫다면서도 정작 찍는 건 여당이란 거다. 제대로 된 야당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민심 반영, 민의 투영의 도구가 선거다. 그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걸 무너뜨리고 ‘민심 따로, 결과 따로’로 간다면 그건 결국 국제사회에서 일본 유권자의 정치의식 부재, 나아가 일본의 한계로 귀착될 뿐이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