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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늘의 문화는 끝났는가(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바느질이나 빨래와 함께 여성문화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노동이 요리술입니다. 부엌은 여성문화의 공간입니다. 그것은 여인들이 지켜가는 신전들이지요.
그곳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성들이 침범할수 없는 여성들만의 성역이었읍니다.
부엌이라는 여성문화의 공간은 단순히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형이하적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들이 매일같이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일상의 기도와도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에서는 절대로 찾아낼수 없는 일들이 그 여성들의 성역속에서 이루어지고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물과 불은 서로 모순하는 두 세계를 상징하고 있지않습니까. 그것들은 각기 다른 정질과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영원히 모순하고 대립하는 양극성을 이루고 있읍니다.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습니다.
물은 얼음이 되어 금속처럼 굳어지고 불은 타올라서 가벼운 공기가 됩니다. 하나는 아래로 흐르는 하강운동을 하고 또하나는 수직적인 상승활동을 합니다.
우리나라 말 자체만 보아도 그렇지요.
물과 불은 「M」과 「P」의 음운적인 대응성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배우는 말, 첫 발음의 질서 역시 「M」과 「P」의 두 소리의 구별입니다.
하나는 부드러운 유음이고 또 하나는 딱딱하고 격렬한 파열음입니다.
거기에서 생겨난 말이 「엄마」와 「아빠」라는 말입니다.
물은 여성적인 것, 어머니적인 부드러움이 있고 불은 남성적인 것, 아버지적인 격렬성이 있읍니다.
그런데 이 모순하는 두 물질의 대립이 부엌의 공간속으로 들어오면 서로 화해하여 손을 잡게 됩니다. 그 행복한 결혼이 바로 요리의 비밀입니다.
요리의 본질은 물과 불의 모순을 조화시키는 기술인 것입니다. 물과 불 사이에 걸쳐진 「남비」의 매개물을 통해서 그것들은 이 삶의 오묘한 미각을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을 끌어다가 불을 끄는 소방사들의 작업과는 다릅니다. 두개의 대립하는 성질을 잘 균형있게 융합시킬 때만이 비로소 「밥」은 지어질 수가 있읍니다.
물이 너무 많고 불기가 적으면 밥은 설고 맙니다. 불이 너무 강하고 물이 약하면 밥은 타버리고 맙니다. 이 화합과 균형의 감각을 우리의 어머니들은 거의 본능으로 매일같이 몸으로 익혀가는 것입니다.
닫힌 것과 열린 것, 영혼과 육체, 개인과 집단, 안과 밖, 소비와 생산, 있는 것과 없는것…. 그리고 모든 생과 죽음. 가만히 관찰해 보십시오. 우리들 주변은 무수한 대립의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읍니다. 문화라고 하는것은 그 대립을 어떻게 균형있게 살리며 융합시켜가는가의 기술인 것입니다.
모든 정치의 기본이 그런것입니다. 경제의 움직임이 그런 것입니다.
부엌의 공간은 바로 그같은 모순이 해소되는 공간이며, 영원히 대립해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거꾸로 생의 미각을 얻어내는 창조의 공간인 것입니다.
만약 부엌의 공간을 정치의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것이 요순이 아니겠읍니까! 모든 「바늘」이나 「빨래」나, 그리고 「요리술」이나 여성문화들은 이렇게 삶의 한방식을 상징해주고 있읍니다. 동시에 그런 여성문화의 상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산업사회의 한 비극을 암시해주고 있읍니다.
해진 옷을 기워가면서 우리는 물질의 존귀함과, 마멸해가는 시간에 저항해가는 삶의 의지를 배웁니다. 결핍이라는 것, 그리고 가난이라는것, 더러운 빨래를 빨면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같은 것을 생각합니다. 순수한 것들에게, 매를 묻히는 모든 폭력에 대해서, 그리고 온갖 사악한 자의 검은 손에 대해서, 삘랫방망이질을 하듯 그렇게 싸워가는 정화의 노동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물과 불의 두 법칙 사이에서, 우리들 생을 양육하는 자양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화합의 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자동·기계화한 부엌은 신전이 아니라 이제는 작은 공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것은 여성문화의 승리가 아니라 거꾸로 그 사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읍니다.
오해하지마십시오. 자유로와진 여성들을 다시 부엌으로 감금하고 바느질이나 빨래의 가사노동속에 묶어두려는 음모가 아닙니다. 그 노동들이 상징해주고 있었던 정신의 영역을, 되찾아오자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바늘, 새로운 빨래, 새로운 요리술의 여성문화의 공간들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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