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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넘긴 「실명제」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실명제에 대한 정책질의를 마지막으로 벌인 29일 재무위는 정부와 민정당과의 견해차이를 확인하고 강경직 재무장관의 소신을 번복시키려 민한당 의원들의 끈질긴 공세로 자 정가까이까지 계속되는 열띤 분위기.
회의 초반 「감」을 잡기에 여념이 없던 여야의원들은 이날 하오 늦게 연기론 쪽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초점을 연기 또는 실명제 법안의 철회 쪽으로 집중.
민정당이 연기 쪽으로 당론을 모았다는 분위기를 감지한 민한당은 임종기 총무 주재로 재무위원 전략회의를 갖고 정부측으로부터 실시연기나 철회 쪽의 답변이 나올 경우 즉각 민한당 정책위 5인 실무소위대안을 골격으로 한 법안을 단독 제출키로 결정.
그러나 강장관의 첫 답변이 「소신불변」으로 일관하자 전략을 바꾸어 정부와 민정당간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채 뭘 믿고 강행하려 드느냐고 정부측을 몰아세우기 시작.
박완규의원 (민한)은 보충질의를 통해 당정협의회에서 강 장관은 어떤 소신을 밝혔느냐고 묻고 정부와 민정당의 생각이 다르고 경제를 보는 시각이 다른 한 법안심의는 무의미하다고 주장.
박의원이 민정당까지 물고 늘어지자 이민섭·정순덕·박종관 의원 등 민정당 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질의를 하라』 『정부와 민정당간 의견 차이가 없다』 『타당을 왜 물고 늘어지느냐』고 고함을 쳐 박태준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
속개된 회의에서도 강장관의 「강항소신」답변은 계속됐고 일문일답식으로 물고 늘어진다고 수차에 걸친 주의와 눈총을 받은 박완규 의원은 보따리를 싸들고 퇴장.
○…재무위의 이날 하이라이트는 김종인 의원(민정)의 발언.
회의 벽두부터 김의원이 민정당의 「대표질의」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민한당도 김의원 발언내용을 들은 후 다시 대책을 찾기로 결정.
김의원 발언시간이 임박해오자 이종찬 민정·임종기 민한·이동진 국민당 총무가 차례로 재무위로 옭라 왔고 김용태 대변인과 남재두 총재비서실장까지 특별방청.
발언직전 이종찬 총무와 밀담을 잠시 나누었던 김의원은 「6·28」 「7· 3」조치의 허구성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경제의 현실, 실명제가 갖고 올 부작용 등에 관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
금의원은 「6·28」 「7·3」조치가 표면적으로는 정의사회구현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올 보면 기업의 법인세인하·고소득층의 소득세인하·은행민영화로 되어 있어 지금까지의 소득분배 왜곡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경제정책이 추구해야할 물질적 정의구현에 배치된다고 비난하고 개개인의 금융재산을 파악한다는 사실자체가 물질적 정의구현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
김의원은 l백% 자신있는 경제정책도 투입하고 나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인데 아직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런 제도를 실시했을 때 그후에 오는 결과를 어떻게 감내 하겠느냐고 추궁.
뒤이어 발언에 나선 장경우 의원도 정부가 보는 경제상황과 경제현실과는 차이가 많다는 점을 수치를 인용해가면서 강조하고 내년 1월 l일부터 실시하겠다는 생각을 재고할 용의가 없느냐고 질문.
이재찬 민정당 대표위원의 보좌역이기도 한 장의원은 사전에 발언내용을 이대표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발언에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미리부터 나돌았다.
○…민정당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민한당 재무위원들은 다시 대책회의를 갖고 재무부측과 민정당의 견해차가 기정사실화한 이상 당정간의 불협화를 최대한 이용하여 책임문제를 추궁키로 결정.
이 방침에 따라 저녁식사 후 속개된 회의에서 민한당의 고재청 의원은 『민한당의 대표성격을 띤 발언을 하겠다』『실시시기를 정하지 않은 채 법안을 심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
고의원은 『일부 신문보도 대로 86년에야 실시한 다면 11대 국회에서는 이 법을 심의할 자격이 없다』며 법안내용이 대폭 바뀔 줄 알면서도 심의에 응하는 것은 야당이 들러리만 서는 것이라고 공박.
뒤이어 김문원·이영준 의원 등이 장관과 민정당의 책임문제를 들고 나오자 민정당의 곽정출·박종관 의원 등이 반격을 개해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해 또다시 정회.
결국 10시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강 재무장관으로부터 『모든 것은 재무위 결정에 따르겠다』는 일보후퇴의 답변을 얻어냄으로써 논쟁은 일단락.<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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