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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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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황금충』이라는 추리 소설이 있다. 미국 작가 「에드거·앨런·포」의 작품. 일종의 암호 소설.
주인공 「레그런드」가 「설리번」이라는 섬에서 곤충 (황금충)을 잡다가 모래속 에 반쯤 묻힌 종이 한장을 발견한다. 양피지였다. 이상한 것은 그 위에 적혀 있는 숫자와 부호들. 이를테면 난수표 같은 것이다.
「레그런드」는 그 가운데 유독 「8」자가 자주 눈에 띄는 것에 흥미를 갖는다. 또하나 특정 숫자와 부호 하나가 짝을 지어 자주 반복되어 있는 것도 이상했다.
작가는 영어 알파벳을 숫자와 부호로 바꾸어 암호를 만드는데 착안했다.
알파벳의 사용 빈도수는 통계상 EAOID…의 순으로 나타난다. 자주 반복되는 「8」자는「E」, 두개의 특정 숫자와 부호가 짝을 지은 암호는 영어의 정관사 「the」라는 것을 알아낸다. 결국 영국의 신화적인 해적 「키드」 선장이 숨겨놓은 보물의 소재를 찾는다.
물론 모든 암호들이 그처럼 단순 (?) 하지는 않다. 국제 정세가 복잡 미묘한 만큼 나라마다 비밀 유지를 위한 암호의 세계도 복잡하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 문명은 암호 추적에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로 조립한 암호를 또다른 컴퓨터가 풀어낸다. 만화 같은 얘기지만,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암호의 역사는 길다. 구약 성서의 예언서 『예레미아』에도 암호 얘기가 있다. 「플루타크」의 『영웅전』에 등장하는 펠로포네수스 전쟁 (BC 431∼404년)에서도 암호가 사용되었다.
『짐은 곧 국가다』라고 외치며 프랑스의 융성을 이룩했던 태양왕 「루이」 14세 때 특히 암호가 발달했다. 「절대 군주」를 지켜준 것은 칼과 창이 아니라 암호라는 비밀 무기였던 것도 같다. 「나폴레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시절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은 현대 암호의 원산지.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지멜만 전보」는 유명한 얘기다. 19l4년8월 독일 경순양함 한척이 발트해에서 좌초했다. 때마침 주변엔 적대 세력인 러시아 순양함이 있었다. 좌초한 독일 함대는 서둘러 암호 해독장을 바다에 버렸다.
러시아 함대는 바로 그 책자를 우연히 건져냈다. 소련은 같은 연합국 세력인 영국에 이것을 넘겨준다.
그후 3년1개월. 영국은 멕시코의 참전을 충동하는 독일의 암호 전문을 입수, 해독한다. 댓가로 미국의 3개 주를 멕시코에 주겠다는 내용까지도. 이것은 미국 참전의 계기가 되었다.
오늘의 과학 만능 시대에도 암호 전쟁은 여전하다. 최근 영국에선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는 한 전문가가 역으로 소련에 그 정보를 준 『세기적인』 간첩 사건이 적발되었다. 런던 근교 첼트남 전자 정보 센터에서 일어난 일.
무려 1만여명이나 되는 영국 암호 해독 요원들의 노고도 어쩌면 헛수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두려운 것은 서방 세계가 소련의 조작 정보에 농락되지나 않았나 하는 것이다. 우리도 먼 나라 얘기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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