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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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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 - 김신용 '환상통'
날품 팔고 노숙하며 30여년 진한 삶의 체험이 진짜 시로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베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부분, 시작 2004년 겨울호 발표)

◆약력

▶1945년 부산 출생▶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시집'버려진 사람들'(88년) '개 같은 날들의 기록'(90년) '몽유속을 걷다'(98년)▶'환상통'(2005년), 소설 '고백'(94년) '기계 앵무새'(97년)▶미당문학상 후보작 '환상통' 외 17편

김신용. 그는 한국 시단에서 유일한 존재다. 여느 시인 지망생이 학교에서 시를 배울 때 그는 서울 남산도서관에서 쉼없이 책을 대출했고, 여느 시인이 서늘한 서재에서 사색에 빠질 때 그는 뙤약볕 아래서 보도블럭을 까는 틈틈이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는 부랑자 생활 30년을 온몸으로 노래해온 시인이다.

'나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했거나/경의를 표할 마음도 없지만/이 짝눈의 늙은 시인에겐 귀싸대기 한 대쯤/기꺼이 맡겨도 좋으련./…/양동 지게꾼 출신인 그의 무거운 등짝에 실려/여기까지 둥둥 떠 온 불안한 세상의 무게 앞에,/…/온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밀어온 그의 전 생애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처분을 기다려도 좋으련.'(김영현,'김신용의 시'부분)

"내 얘기를 김영현이가 시로 썼다"며 자랑스레 시집을 꺼내보이는 환갑된 시인의 얼굴은 해맑았다. 지난 시절, 오로지 한끼 밥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던 시절을 말할 때도 시인의 얼굴은 밝았다. 20년 넘게 지게를 짓고 산 탓에 요즘에도 통증에 시달린다는 시 속에서도 시인은 담담했다. 서울역 앞 양동에서 지게지고, 날품팔고, 노숙하며 30년을 살아온 그는 너무도 반듯했다. 너무 해맑고 반듯해 자꾸만 목이 메었다.

누구도 시를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시를 썼다. 몇 편의 시가 최승호 시인에게 건네진 1988년 문단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문단에선 일대 사건이었다. 새로운 신인이 등장했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의 시가 체험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얼마 뒤, 문단은 차라리 경악에 빠졌다.

예심에서 그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굉장히 진하고 강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인이다. 체험을 드러내기에 그치기 쉬운 데 미적으로 끌고가는 힘이 굉장하다. '이 시는 진짜'라고 느껴진다(이혜원)." 올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은 단연 김신용 시인일 것이다.

손민호 기자

소설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예측불허의 상상력 뒤켠에 현실에 대한 시퍼런 비판이

◆작품 소개

나는 집안 어려운 상고생이다. 원래 좀 노는 편이었다. 그러나 중학생 때 아버지가 일하는 허름한 사무실에 도시락 심부름을 갔다온 뒤로 조용한 소년이 됐다.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일하는 와중, 전철 푸시맨 아르바이트도 맡는다. 열심히 사람을 밀어내던 어느날 아버지를 밀어넣기도 한다. 그러던 겨울 어느날 아버지가 사라진다. 계절이 바뀌고 양복 차림의 기린이 전철역에 나타난다. 난 기린이 아버지란 생각을 하고 기린에게 집안의 근황을 전한다. 그러자 기린이 말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약력

▶1968년 경북 울산 출생▶2003년 문학동네로 등단▶장편 '지구영웅전설'(2003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년), 소설집 '카스테라'(2005년)▶한겨레문학상(2003년), 신동엽창작상(2005년)▶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단언컨대 작가 박민규는 오늘날 가장 논쟁적인 작가다. 그의 낯선 문법에 열광하는 독자를 보면서 평론가들은 팽팽히 맞선다. 그의 출현을 '대한민국 문학사 통틀어 가장 신선한 사건'이라고 옹호하는 축이 있는 반면, 심지어 '그의 사진을 보면 이게 어디 소설가냐란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부류도 있다. 예심에선, 심사위원 전원 추천을 받았다.

박민규 식으로 박민규를 잠깐 살펴보자. 이름하여, 박민규에 관하여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두가지. 한 문예지(지금은 망해서 없어졌다) 편집장 시절이던 시절 그는 작가 사진을 전담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편집장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다. 그때 오만가지 표정을 짓는 문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가락.시계.구두 뭐 이런 것들만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를 다시 활용해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실었다. 그는 '초강력 슈퍼 울트라' 공처가이기도 하다. 아내의 신발끈이 풀어지면 길을 걷다가도 무릎 꿇고 앉아 그녀 신발 위에 어여쁜 리본을 만든다. 그리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 아내는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활짝 웃는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대체로 소외된 계층이고, 대체로 세상에 순응한다. 푸시맨 상고생의 생각 한 토막이 좋은 예다. 편의점 사장이 아르바이트하는 여자애의 허벅지를 만진다. 그때 나는 '허벅지를 만지면 시간당 만원을 줘야 되는 게 아닌가''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러고 고작, 1000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따뜻하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세상도 사랑한다. 그의 소설은 늘 낮은 곳의 사람을 말한다. 뜬금없이 기린이 출몰하는 예측불허의 상상력 뒤엔 현실에 대한 시퍼런 비판이 숨어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쩌면 피라미드의 건설 비결도 억울함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관두면 너무 억울해. 아마도 노예들의 산수란, 보다 그런 것이었겠지'같은 문장이 나올 수 없다. 왜 하필 기린일까. 작가의 답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어쩔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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