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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미흡 「국정문답」|저질 질문· 부실답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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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기국회의 국정문답이 열도를 더해가면서 저질질문· 부실답변· 부실자료가 국회상위 곳곳에서 말썽이 되고 있다.
의원들의 저질발언도 끊이지 않았지만 올해 따라 행정부 측의 답변과 자료에 대한 시비도 유난히 많다.
말 그대로 국회의 생산성을 위해서라도 「저질」 과 「부실」 의 실태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측 답변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상호 모순되거나, 다른 정부기관의 보고내용과 다르게 보고되는 경우. 예컨대 지난 14일 교체 위에서 이희성 교통장관은 국제관광공사 법 개정안의 제안설명에서 『경주 보문단지를 국제관광공사에 현물 출자한다』 고 말했다가 나중 답변에서는 『보문단지를 민간인에게 불하할 계획』 이라고 해 혼선. 이 바람에 의원들의 힐난으로 회의가 약 30분간 정회됐다.
21일 내무위에서는 서울시가 시의 재경자립도가 82%라고 보고했으나 그전에 내무부는 98%로 보고한 바 있어 의원들이 『어느 쪽이 맞느냐』 고 들고나섰다.
그런가하면 보사위에서는 정한주 노동부장관의 답변에 백찬기 의원 (의정)이 『질문과 1백80도 다른 답변을 하고 있다』 고 문제를 제기하자 정 장관자신도 『답변이 상당히 빗나간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고 해 의원들이 실소.
내무위에서 장교출신자 특채문제에 관해 박찬긍 총무처장관이 시원한 해명을 못해 밤12시가 넘도록 회의를 끌었고, 재무위에서 강경식 재무장관은 자기앞수표의 실명 거래제에 관해 어물어물 넘기려 하다가 거듭 추궁을 받고서야 『검토하고 있다』 고 실토.
장관들의 답변 부실 문제는 민정당 당직자 회의에서도 제기돼 이재형 대표위원 등 당직자들이 『전반적으로 미흡했다』 고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
이종찬 총무는 『답변에 뚜렷한 의지의 표시가 없고 답변의 자세나 내용에 있어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고 평가했다.
국회 주변에선 현 내각의 팀이 전 팀만 못하지 않느냐는 얘기와 함께 각료들이 소관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많다.
심지어 모 장관은 한자를 제대로 못 읽어 써주는 답변자료도 서투르게 낭독한다는 말이 있고 몇몇 장관들은 써 주는 대로 읽는 「낭독형 답변」 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측의 자료부실도 말썽거리의 큰 원인이었다.
외무위에서 외무부는 2급 비밀, 3급 비밀, 대외비 등의 붉은 표식가 붙은 보고를 하다가 의원들로부터 『공개사항과 비밀사항을 구분해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고는 『구분· 설명할 준비가 미처 안됐다』 고 쩔쩔맨 일이 있었고 그러다가 의원들로부터 『「부시」미 부통령 방한도 대외비 사항이냐』는 핀잔을 받았다.
외무부는 지나친 비밀주의로 나가 신문에 보도된 상해 성명 10주년에 즈음한 미· 중공공동성명까지도 3급 비밀로 분류해 의원들은 「무사안일」 이라고 지적.
농수산위에선 수산청이 금년도 어획고를 누락시켰다가 지적을 받고 뒤에 다시 보고를 하기로 했고 재무위에선 산업은행의 보고내용이 부실하다고 하여 보고를 다음날로 미루는 사태가 벌어졌다.
건설위에선 지난3월 임시국회 때 충주댐의 건설 공정이 33%라고 했다가 이번엔 33·2%라고 해 의원들이 7개월 동안 겨우 0·2%의 공정밖에 진척이 안 됐느냐며 엉터리 보고라고 들고일어나 소란.
또 호남고속도로의 4차선 확장공사가 내년3월 착공된다는 말만 있지 준공일자나 예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어 정규헌· 김형래· 이홍배 의원 등 호남출신 야당 의원들이 일제히 항의.
김종호 건설부장관이 재정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며 얼버무리려 했으나 의원들이 공세를 계속 취하자 그제 서야 86년 아시안게임 전까지는 기필코 완성하겠다고 약속.
88올림픽고속도로의 건설공정을 김 건설장관이 본회의에서 1백75km 중 42%를 완료했다고 답변한 것을 기??관리실장은 건설위에서 32%라고 답변해 말썽. 자료내용이 부실할 뿐 아니라 「추후 별도보고」 라는 사법을 마구 사용해 말썽이 되기도 했다.
내무위에서 김진재 의원 (민정) 은 12개 요구사항 중 4개나 빠져있다며 지난4월에 요청한「한강의 오염실태」 자료요구가 계속 「추후 보고」로 되어있다고 호통.
노동부가 보사위에 제출한 두툼한 자료집에는 도산 실태에 관한 심헌섭 의원 (민한) 요구에 『노동부에 보관된 부수가 없으므로 제출할 수 없다』 고 쓰여 있더라고 심 의원이 부언.
○…의원들의 저질발언도 각 상위에서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문공위에서 임재정 의원 (민한) 은 정재각 정신문화연구원장이 출석한 가운데 『정신문화연구원장 자리, 그 대단한 자리가 아냐』 라고 했는가 하면 김한주 교원공제 회장에게는 『교원공제회의 돈으로 간부들의 배때기를 채운다』 고 폭언을 해 동료 의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박재욱 의원 (국민) 은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문공위 소속의원들의 이름을 다 외느냐』 『교수나 할 일이지 왜 여기에 와 있느냐』 고 인신공격조의 힐문.
구룡현 의원 (민정) 은 국립도서관장에게 『당신 전공이 뭐요』라고 물었고 다른 한 의원은 『사서자격이나 있느냐』 고 하는 등 국회에서의 질의가 아닌 취조 식의 발언.
L 의원은 국정교과서가 간부들을 소개하지 않았다고 고함을 질러 정회가 되고 결국 국정교과서의 보고가 하루 늦어졌다. 그러자 민정당 의원들은 『회의가 한 사람한테 질질 끌려 다녀서야 되겠느냐』 고 불평.
19일 농수산위에서 곽정현 의원 (민정) 은 식생활개선을 위해 닭고기· 돼지고기와 소주 1병을 공무원들에게 보너스로 주도록 건의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 좌중이 어이없어 했다.
건설위에서 자신이 건설업자인 이중희 의원 (민한) 은 임대 아파트 값을 대폭 올려 주택건설업자의 도산을 막을 용의가 없느냐고 해 동료 야당의원들까지 민망한 표정.
문공위에서 L 의원은 식민사관을 가진 학자의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가 민정당으로부터「저질요구」의 예로 지적됐다.
정부측을 불필요하게 추켜세우거나 비호하는 발언도 나왔는데 예컨대 상공위에서 자신이 광업을 하는 김영생 의원 (국민) 은 광업진흥공사의 보고에 앞서 『자료가 충실하니 내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안만 간략히 듣자』 고 제의.
또 의원들의 발언 중에는 평소의 감정을 토로하는 발언도 적지 않았다.
상공위에서 유재희 의원 (민한) 은 『한국중공업 준공식에 국회의원을 초청해놓고 장관은 로열박스에 앉히면서 국회의원들의 좌석을 구석으로 배치한 건 국회 경시풍조가 아니냐』 고 물고 늘어져 발언일부가 삭제되고 정회소동까지 빚어졌다.
운영위에서 김재영 의원 (민한) 은 평통지역 협의회회의에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놓고 인사나 격려의 말 한마디 못하게 하는 획일적 회의 운영을 지양하라고 촉구하면서 역시 소홀한 의원들의 좌석배치를 중점 성토. <이수근·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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