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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가기 전에 … 벼락치기 임시주총 몰리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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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반도체 조립회사인 A사는 올해가 가기 전에 서둘러 임시 주주총회를 열기로 했다. 감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가 내년에 열어도 되는 주총을 올해 앞당겨서 하는 이유는 코스닥협회가 보낸 ‘섀도보팅 제도 폐지에 대한 대응방안’을 보고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6일 코스닥 상장사에 발송된 이 문서는 “주식이 분산된 상장회사의 경우 섀도보팅 제도의 폐지로 주주총회 개최와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며 “올해 안에 임시 주총을 열면 섀도보팅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소액주주의 지분이 높아 의결 정족수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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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섀도보팅(Shadow voting·그림자투표) 제도의 폐지로 국내 상장사에 때아닌 임시 주총 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 상장사가 섀도보팅제가 폐지되기 전에 감사 등을 선임하기 위해 앞다퉈 주총을 여는가 하면 전자투표제·서면투표제 등 대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91년 도입된 섀도보팅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리행사 제도다. 주총에서 보통 결의는 전체 주주의 25%(지분율)가 참석해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전체 주주의 25%가 주총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총에 주주 100명 중 10명만 참여해 8명이 안건에 찬성했다면 참석하지 않은 다른 주주도 이 비율로 표결한 것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상장기업이 이 제도를 주요 의사결정 때 악용해 일반 주주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지난해 5월 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2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659개사(12월 결산 법인) 가운데 최대주주·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25% 미만인 상장사는 99곳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네이버·포스코·KB금융 등 주요 상장사가 포함돼 있다. 방문옥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상장사가 앞으로는 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 등 다양한 의결권 행사 방법을 제공해 주주의 의결권 행사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섀도보팅의 폐지가 임박하자 상장사엔 감사 선임이 발등의 불이 됐다. 감사 선임 때 아무리 지분이 많은 대주주라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주주 지분이 30%, A기관투자가와 B기관투자가는 각각 10%, 5%인 회사의 경우 이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도는 3%에 불과하다. 이들의 총 지분율은 45%에 달하지만 감사 선임 때는 각 3%씩 모두 9%만 행사할 수 있다. 나머지(16%)는 소액주주가 주총에 참여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한 상장사 관계자는 “섀도보팅제가 있을 땐 이 를 활용해 감사를 선임하면 됐지만 내년부터는 주주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위임장을 받아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올해가 가기 전에 임시 주총을 여는 상장사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감사 선임을 이유로 임시 주총 소집을 결의한 회사는 41개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11월 한 달 무려 93개사가 임시 주총을 열겠다고 공시했다. 대부분 감사의 임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도 미리 감사를 뽑기 위해 주총을 연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정책연구실 과장은 “요즘 개인의 주식 보유 목적이 투자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며 “주총 출석 주식을 기준으로 해야지 주총에 무관심한 주주까지 고려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김창규·염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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