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매각 또 꼬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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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다 된 줄 알았던 한보철강 매각이 다시 꼬이고 있다.

1997년 부도를 낸 한보철강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6년 만인 지난 2월 3억7천7백만달러(약 4천5백억원)에 AK캐피털에 팔렸다. 오는 7월 12일 AK캐피털이 잔금을 지불하면 모든 매각절차가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밀린 세금 문제가 불거졌다. 국세청.관세청 등 조세 당국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그간 못받은 세금(연체금 포함) 2천3백57억원을 모두 받겠다고 나서자, 그만큼 몫이 줄어들게 된 채권단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국세청 등은 한보철강이 내지 않은 세금을 깎아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모두 받아내야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산업.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총 6조1천억원의 빚을 대부분 깎아준 데다, 매각대금도 5천억원이 안된다"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조세 당국이 가져가면 채권단 몫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보철강은 매각협상 절차에 따라 오는 23일까지 회사정리계획을 새로 만들어 채권단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요 채권 금융회사들은 조세 당국이 세금을 깎아주지 않으면 매각 승인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팔아봤자 손에 쥐는 게 없으니 힘들게 매각 절차를 밟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대 채권자인 자산관리공사(캠코)측은 "이달 안에 세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보철강 매각이 무산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재매각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곧바로 파산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특히 정부와 조세 당국이 약속을 뒤집는 바람에 문제가 더 꼬였다고 주장한다.

한보철강 매각사무국 김용훈 팀장은 "2년 전 매각협상이 난항을 겪을 당시 정부와 조세 당국은 밀린 세금의 10%인 2백억원 가량만 받고 90%를 깎아줄 수 있다고 구두 약속했었다"며 "그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제 와서'법적으로 안된다'며 2천3백57억원을 모두 받겠다면 매각을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캠코 고위 관계자는"조세당국은 세금을 얼마간 깎아주고 채권단이 나머지 세금을 떠안는 방식으로 서로 양보하는 것이 해법"이라며 "재정경제부가 중재에 나서고 있어 시한 안에 절충안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세금문제로 채권단이 한보철강 매각을 거부해 본계약이 무산되더라도 매수자인 AK캐피털 측에 계약위반에 따른 위약금 등은 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철강은 지난해 3월 양해각서(MOU)체결 후에도 실사과정에서 가격과 발전소 부지 이전 등의 문제로 계약 무산 위기를 수차례 겪다가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본계약 체결에 합의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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