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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그만두고 역사 기행 작가 … '브라보 인생 2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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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기성씨가 지난 4월 이탈리아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베키오 궁전의 첨탑(왼쪽)과 두오모 성당의 둥근 지붕(오른쪽)이 보인다. [사진 이기성]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책만 읽어서는 실감을 못하니깐….”

 최근 세 번째 여행기 『발칸 유럽 역사 산책』을 펴낸 이기성(61)씨의 말이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이씨는 퇴직 후 “직접 가서 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책을 쓴다. 지난 1일 서울 관철동 자신의 집필실에서 만난 이씨는 수첩 몇 권을 꺼내보였다. 깨알 같은 글씨로 각 페이지가 가득 차 있었다. 지난 201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50여 일 간의 여정이 담겨 있다.

 사실 회사를 더 오래 다니길 바랐다고 한다. “내 능력이 힘에 부쳐서 그만두는 게 아니잖아요. 시켜주면 더 할 수 있지만 나가라고 하니깐.” 이씨는 1979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두산산업에 입사했다. 81년 SK에너지(당시 유공)로 옮겨 충청에너지(당시 청주도시가스) 경영지원본부장(전무)까지 지낸 뒤 2006년 퇴직했다. 그 무렵 먼저 회사를 나간 선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회사 나가면 자유로울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더 막막하다”고 했다. 어떤 걸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생각난 게 역사였다. 대입 당시 서양사학과 진학을 고민했을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다.

 이씨는 2007년 8월부터 온 가족이 중국 시안(西安)에서 1년 동안 지냈던 경험을 토대로 첫 번째 책을 썼다. 2009년에 나온 『장안 그리고 시안』이다. 당시 이씨는 아들과 함께 시안외국어대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처음부터 책을 쓸 계획은 없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메모한 내용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니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엔 스페인 여행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반쪽을 지워버린 사람들』을 펴냈다.

 따로 역사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이씨지만 자신의 책에 자부심을 갖는다. 해외 여행기를 통해 한국의 현실을 들여다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론이 많이 분열돼 있잖아요.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지 알려주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가톨릭과 이슬람의 접점인 스페인을 골랐고, 동방정교회·가톨릭·이슬람이 만나는 발칸 반도에 다녀왔다. 다음 책은 프랑크 왕국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와 올해 차례로 독일·이탈리아를 다녀왔고 내년에 프랑스를 여행할 예정이다.

 이씨는 “돈이 있어도 못하는 게 인생 2막 설계”라고 조언했다. 현직에 있을 때 미리 자신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방향 설계를 해두는 게 가장 좋다는 얘기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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