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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파업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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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종사 노조 파업으로 파행 운항했던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이 18일부터 정상화된다.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지 8일 만이다. 그동안 승객들이 겪은 불편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 송상훈 정책사회부 차장

아시아나항공 파업은 노사정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우선 제 몫 챙기기에만 급급한 노조의 행태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조종사 노조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무리한 조건까지 넣어가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했다. 언론은 물론 국민도 이런 노조의 행태를 비판했다. 파업을 하는 노조원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사측은 겉으로는 수천억원의 손해를 본 피해자다.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하루 손실이 200억원 안팎이고, 파업기간 전체적으로 24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순이익이 2680억원이니 거의 1년 장사를 공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측이 손해를 봤다고 해서 파업 장기화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사측은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이후 협상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정부에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또 사측이 손실을 부풀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측이 주장하는 손실 규모는 매출액 기준이다. 증권시장 애널리스트들은 순이익 개념으로 따지면 파업 중 손실규모는 많이 잡아도 200억원이 채 안될 것으로 분석한다. 또 이번에 대규모 결항 사태를 겪은 국내선(제주 노선 제외)은 대부분 여름 성수기 때 적자를 보는 노선이다. 이번 운항 중단이 오히려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파업 중 아시아나항공의 주가가 오른 것도 사측이 엄살을 떨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파업 직전 4655원이었던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8월 12일 현재 4715원으로 1.3% 상승했다. 이 기간은 항공사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가 폭등한 시기였다. 같은 기간 대한항공의 주가가 1만9200원에서 1만9100원으로 떨어진 것도 유가 때문이었다.

노사가 버티는 바람에 파업이 장기화된 데는 노동정책을 붙잡고 갈팡질팡해 온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권 초기에는 친노(親勞) 성향이 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노동계에 비해 경제계가 세다. 향후 5년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등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이 2003년 3월 노동부 공무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불법파업 중인 두산중공업 분규 현장으로 달려가 손수 합의를 이끌어 낸 것도 이 무렵이다. 권 전 장관은 "(노조가 얘기하는 것이) 틀린 주장이 아닌데 불법행동을 엄단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 노조 편을 들기도 했다. 이때는 '대화와 타협'이 '법과 원칙'보다 힘을 받았던 시기로 노조가 힘을 얻고 대규모 사업장에서 파업이 잇따랐다.

친노 성향의 노동정책은 언론의 비난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쏟아지면서 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올 들어 부쩍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포기를 강조하는 등 반노(反勞) 성향의 발언을 많이 쏟아내고 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법과 원칙대로 한다는 입장을 중시하는 것은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노동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지만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대화채널이 끊겨 버린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파업사태는 이런 참여정부 노동정책 변화의 결과물이다. 항공사 노조는 대화 상대도 없는 상태에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사측은 정부가 결국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장기전을 펼친 것이다.

정부가 굳이 분규를 일으킨 단위 노조와 직접 대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노동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상급단체와의 대화채널은 열어 둬야 한다. 지금처럼 노조와 정부, 사측과 노조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는 노사정 갈등을 풀 수 없다.

노사정이 합심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도 처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노동계와 감정싸움만 하다 보면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송상훈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