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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자본주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조검사는 논고의 결론으로 『조피고인 자신이 북한과의 합작을 극력 부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사실이 국민에 대한 반역행위로 규정되는 이상 그가 매혹적인 평화통일을 민족이라는 가명아래 부르짖음으로써 전후 있을수 없는 페미니즘을 얼마나 자극시켰으며 해방의 감격을 몸소 체험하지 못한 청년학도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유토피아적인 새로운 조국을 환상케하였는가? 그 죄는 도저히 묵과할수 없을 것이다』고 말을 맺었다.
6월17일부터 변론이 시작됐다. 첫 변론에 나선 김춘봉변호사는 『진보당의 이념은 공산독재와 동시에 자본가의 독재를 배격하는 혁신정치를 지향하고 있으며 수정자본주의라 말할수 있다』고 했다. 그는 평화통일론에 대해서도 국제정세의 변천에 따른 귀결이며 유엔결의를 존중하는 통일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진보당의 통일방안이 보안법에 저촉된다면 북진통일이 아닌 민주당이나 자유당의 평화적 통일방안 역시 같이 다루어져야 할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격만변호인은 『이 자리에 계시는 죽산 조봉암선생을 나는 재판한 일이 있읍니다. 죽산선생이 농림장관으로 계실 때 예산을 관사 수리비로 유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것입니다. 그때 재판석에서 나는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죽산선생의 손가락들이 떨어져 없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울었읍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동상으로 손가락마디들이 썩어 떨어진 고생을 겪은 분을 일제시대 그래도 편히 지낸 내가 감히 재판할수 있을까 생각했읍니다.
그때 사실 심리를 해가는 도중 나는 이 사건은 정치적 모략이요 중상이라고 판단하고 단연 무죄를 선고했던 것입니다』는 말로 변론을 시작해 방청석을 흐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변론 공판도중 새로운사실이 발견돼 이에 대한 심문으로 옮겨졌다. 새로운 사실이란 양명산이 특무대에서 조사받고 있던 기간 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이었다.
양은 조사가 사실상 끝난 3월16일 자살을 기도했다가 죽음직전에 발견돼 되살아났지만 5, 6시간 의식불명상태에 있었으며 1심재판을 받는 기간까지 목에 밧줄을 맸던 자국이 남아있었다. 변호인측은 양이 간첩사건을 털어놓은뒤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은 거짓 진술에 대한 양심의 가책등 어떤 견딜수 없는 고통때문일것이라고 했다. 그의 유서가 증거품으로 재판정에 제시됐다.
유서 내용-「처장님(특무대 특무처장을 말함) 그간의 후의를 거듭 감사드립니다. 기왕 갈길이니 조건도 내가 부재하여도 처리될 단계에 이르렀사옵기 갑니다. 내내 국가 민족에 행복있기를 빌며 또 처장님 이하 제위의 건강을 축복하면서… 시체는 가처에게 주시고 감시자를 꾸짖지 말아주시옵소서. 세상에 났던 우민.』
양의 자살미수 사건에 대한 변호인 심문과 함께 재판부는 보충심문을 했다.
▲재관부=양피고인이 특무대에서 쓴 유서는 조피고인을 회생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나.
▲양=나는 애국심으로 죽기를 원했던 것이지 그런 생각은 한적이 없다.
▲재=유서는 무엇으로 썼나.
▲양=죽음만을 생각했지 만년필인지 펜인지 조차 모른다.
▲재=조피고인이 북에 쪽지를 보냈다고 했는데 북에선 조의 필적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양=아마 잡지등에 나타난 필적으로 알것이다.
양의 자살미수에 대한 보충심문에서도 그의 자살동기를 비롯해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데 도움되는 어떤 자료도 얻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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