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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정과 먼 농촌드라머…어설픈 상상력으로 만든 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농촌실정도 모르면서 동화롤 꾸미듯 어설픈 상상력만으로 농촌드라머라고 만든게 지난달 27일 KBS제1TV가 방영한 고향시리즈중의 정착편 이다.
마당 한가운데 우물과 장독대가있는 농가가 어디있고 두끼 먹여주고 1만2천원주는 공사판은 또 어디 있는가.
점심과 술·담배주는게 관행이 그 품삯은 6천원안팎이 현실인데 밥안주고 8천원이라는 말도 노임현실을 모른 때문이다.
쇠스랑 한개로 야산을 개간하겠다고 끌쩍거리는것은 수준낮은 극작법 탓이지만 개간하겠다고 이산 저산 쏘다니는 짓은 허가없인 개간할수 없는 법규정을 모른 소치다.
처녀 총각이 어른들앞에서 반말로 사랑다툼을 벌일만큼 농촌이 개방되었으며 40대의 숙부가 체통없이 30이 다된 조카를 껴안고 감격해 할만큼 전통문화의 인습은 사라졌을까.
새마을 사업으로 경운기 세상이 됐는데 농촌하면 으레 지게를 연상하여 빈번하게 지게꾼들을 등징시킨건 60년대의 농촌풍경을 그린 꼴이 됐다.
「땀 흘릴줄 알고 참고 기다릴줄 알아야 좋은 농사꾼이 된다」는 중학생책에나 있음직한 말로 거창한 귀농의지를 계몽하고 있으니 참 딱하다.
어디 그런걸 몰라서 이농현상이 벌어졌겠는가.
『한글세대작가가 본일본』은 지난달 28일 KBS제TV가 해외특별제작으로 꾸며낸 다큐멘터리-.
일본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겸손은 좋았으나 스케치하듯 평범한 풍물들을 곁들이고 인터뷰자들의 위사스런 말로 채운 내용이 피상적이란 느낌이 짙다.
극일하자는 말에는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실체를 옳게 보아 강한 국력을 기르자는 진취적인 뜻이 담겼을 것이다.
소설가이면서도 수천권의 전문장서를 지녔는데 우리는 왜 그러질 못한가. 프랑스에 유학한 엘리트가 잡지사기자로서 긍지를 갖는데 우리에겐 쓸데없는 권위의식이나 조로현상은 없는가.
요란한 소리를 내지않으면서도 그늘에서 불우한 사람을 돕는 여인들에게서 우리가 배울점은 없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하듯 우리는 민족적 쇼비니즘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점들이 유능한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통찰되지 못한게 아쉬운 일이었다.
『떡잎의 춤』은 MBC-TV의 추석특집드라머-. 창사 20주년기념 당선작답게 1시간반짜리 긴드라머면서 지루하지 않고 인고의 길을 걸어온 여인의 진한 모성애가 밀도있게 그려져 감동을 준다.
그러나 기승전결의 완벽한 결구가 오히려 흠이 됐다. 드라머는 영화와 달리 딴일하면서 보거나 중도에 시청하는 경우가 흔해 단편적인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도록 군더더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설명을 생략한것, 예컨대 아버지를 찾으라는 어머니의 절규, 연희의 심리갈등도 너무 고차적으로 처리된듯 싶다.
20년전의 사건인 십장의 행패장면에서 「솔」 담뱃갑이 호주머니에서 삐죽이 비친건 큰실수로 시대감각을 흐려놓았다.
청주댁(이효춘분)의 열연이 돋보였고 아침햇볕을 역광삼아 부녀가 손잡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영상미의 성공으로 예술성을 느끼게까지 한다.
드라머시청자는 줄거리를 통한 작품의 이해보다는 인상깊은 장면이 감성을 깊게 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작품은 TV영화적 감각이 짙은데 추석준비에 바쁜 7시대에 방영한 건 작품의 값을 깎은 결과를 빚었을것이다. 신규호<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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