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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무산 조오현 스님의 기념사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무산 조오현 스님 인터뷰가 잡혔다는 통보를 하며 신준봉 기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냥 차나 한잔 하자며 만나 주신답니다. 인터뷰가 성사될 지는 일단 만나봐야 압니다. 사진 못 찍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오세요.”

미리 검색을 했다. 시조 시인이자 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 조오현 스님. 명성에 비해 사진이 거의 없다. 심지어 사진 없는 기사도 있다.

신문에 사진 없는 인터뷰 기사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상황이 짐작된다.

인사를 드리고 마주 앉았다. 카메라를 가방에서 미리 꺼내지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판단할 요량이었다.

신준봉 기자가 사진기자도 함께 왔노라 알리며 넌지시 핸드폰을 꺼냈다.

인터뷰를 알리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사진은 찍어서 뭐 할라꼬. 사진 안 된다. 핸드폰으로 녹음 할라꼬. 이리 내라 핸드폰.”

녹음용 핸드폰은 그 자리서 압수되어 스님 서랍으로 직행했다.

만약에 미리 카메라를 꺼내 놓았다면 카메라도 핸드폰 신세가 되었을 터다.

“중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지 잘났다고 하는 꼴 보기도 싫다. 그런 꼴 보기도 싫다 캐놓고 내가 신문에 나가면 우째되겠노. 인터뷰는 절대 안 된다.”

낭패다. 선전포고 하자마자 총 칼 빼앗기고 항복해야 할 상황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신준봉 기자의 뚝심으로 인터뷰 아닌 듯한 인터뷰(?)는 이어졌다.

시조를 각별히 아끼는 시인으로서 시조의 의미, 시조에 무관심한 세태에 대한 일침, 시조 부흥 방안,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시조를 벗어난 사사로운 질문은 영락없이 피해간다.

사사로이 당신이 부각되는 것은 절대 불가하고 시조 진흥만을 원하는 마음, 한 치의 벗어남도 없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니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중이 신문에 등장하여 잘난 척하는 꼴을 보기 싫다는 분을 설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온갖 불안감이 엄습한다.

한창 고민 중인데, “이제 그만 하고 가서 밥들 먹어.”라며 벌떡 일어서 버린다.

헉! 카메라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인터뷰는 끝나 버렸다.

아! 이런! 사진을 찍지도 못하고 인터뷰가 끝나버린 초유의 일이 생겨버렸다.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 순간, 시 전문지 '유심'의 홍사성 주간이 스님에게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청을 드린다.

“그럴까 그럼”이란 스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카메라를 꺼내는 동안 벌써 배석자들이 나란히 기념사진 포즈를 취했다.

“스님! 그냥 앉아서 찍으시죠. 이 카메라는 다들 앉아도 넓게 찍을 수 있습니다.”

눈치 빠른(?) 배석자들이 얼른 각자 자리에 앉았다.

셔터를 누르는 카메라 렌즈엔 스님만 보인다. 옆에 배석한 사람들이 보일 리 만무하다.

스님! 용서 하십시오. 기념사진엔 스님만 담겼습니다. 홍사성 주간, 이경철 문학평론가, 홍성란 시인 죄송합니다. 다 같이 나온 사진 한 장도 못 찍었습니다. 단 한 장이라도 찍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진 팁]
잘난 척하며 사진 찍히는 게 싫다는 스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창을 통해 몰래카메라를 찍은 듯 사진을 만들었다. 스님 앞에 드리운 창과 화초의 그림자는 작은 유리를 투영하여 만들었다. 먼저 유리에 창과 화초가 비치는 각도를 찾은 뒤, 그 유리를 통해 사진을 찍으면 허상과 실상이 함께 찍히게 된다. 쇼 윈도에 비친 바깥 풍경과 내부를 함께 찍는 원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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