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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모자이크, 이젠 걷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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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식
강인식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뉴욕 ‘9·11 메모리얼 뮤지엄’을 방문했다. 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자리를, 그들은 더 깊게 파내어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란 이름의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금속으로 만든 웅덩이 가장자리엔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낯선 방문자인 나는 음각으로 새겨진 희생자의 부재를 촉각으로 느꼈고, 분당 200t씩 떨어지는 물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깊이깊이 떨어진 물의 끝을, 방문자는 가늠할 수 없었다.

 물이 떨어져내린 지하의 뮤지엄에서 어떤 방을 만났다. 그곳엔 촉각으로 느꼈던 이름의 주인들이 있었다. 벽면은 그들의 얼굴로 채워져 있었다. 터치패널 위의 알파벳 A에 손가락을 갖다 대니 A로 시작되는 이름들이 쭉 화면에 떴다.

 A***. 그녀는 9살 딸의 엄마였다. 워킹맘이었다. 곧 있으면 딸의 생일이었다. 어제(2001년 9월 10일) 남편과 생일 파티에 대해 얘기했다. 9월 11일은 시내에서 선물을 사기로 했다. 딸에겐 비밀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아파했다.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였으므로.

방을 나오면 새파랗게 칠해진 콘크리트 벽과 마주 서게 된다. 9월 11일 뉴욕 가을의 하늘은 그렇게 파랬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시간의 흐름이 결코 당신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 건물의 잔해를 녹여 만든 시구(時句)는 날카롭게 스며들어 각인됐다.

 1987년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 완공과 함께 학교 전체가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국민학교 6학년 우리는 감상문이 성적에 들어간다는 교사의 말에 성실히 기념관을 둘러봤다. 대부분 잊었지만 거칠게 재현된 고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대문형무소나 전쟁기념관에 대한 기억도 거의 비슷하다. 고난의 추상은 있으나 고난의 주체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치욕의 시간 뒤에, 우리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늘 다짐했다.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며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포퓰리즘에 올라탄 국가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우리의 수많은 기념관은 어떤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가.

 세월호는 엄청난 치욕이다. 페리호·성수대교·삼풍백화점이 있었기에 더 그렇다.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해, 죄없이 죽어간 우리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과 삶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존해야 한다. 추모관은 ‘서울의 핫 플레이스’가 돼야 한다. 동원하지 않아도, 늘 사람들로 붐비도록 디자인돼야 한다. 집요하고 디테일하게 그날을 붙잡아 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희생자 얼굴을 덮어씌운 모자이크조차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희생자와 대면할 수 없는데, 이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곧 세월호를 잊게 될 것이다. 기억하지 않은 죄의 대가는 또 다른 치욕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제2의 유병언과 이준석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