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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타협효과로 유도된 선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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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호 29면

평가방식에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있다. 우리의 뇌는 어떤 방식을 더 많이 활용할까? 절대평가는 평가 기준과 우선순위부터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선정된 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 대상의 속성을 일일이 파악하고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절대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우리의 뇌는 대단히 많은 인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반면 상대평가는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에 따라 대상 간 우열만 가리면 된다. 이 때문에 상대평가는 절대평가에 비해 인지 자원을 아낄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몸속의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주로 상대평가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의 뇌가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손실 회피성이다. 우리의 뇌는 특정 속성에 대한 선호가 불분명할 경우 양극단에 위치한 대안은 회피하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끼는 중간 대안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타협 효과’라 한다. 다음을 보자.

A. 고급 기능의 노트북(150만원)
B. 중급 기능의 노트북(100만원)
C. 저급 기능의 노트북(50만원)

일반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노트북의 가격이 중요하겠지만 단순히 문서작업만 할 것이 아니라면 기능도 매우 중요하다. A는 기능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부담되고, C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기능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가격과 기능 중 본인의 선호가 불분명할 경우 고민이 깊어지는데 이럴 때 타협 효과가 발생해 가격도 적당하고 기능도 적당한 중간 대안(B)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간다.

이러한 타협 효과는 매우 강력하게 작동해 판매자가 상품 구성을 살짝 변경하는 수고만으로도 소비자의 선호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음을 보자

S. 최고급 기능의 노트북(200만원)
A. 고급 기능의 노트북(150만원)
B. 중급 기능의 노트북(100만원)

이번에는 저가의 C를 없애고 최고급 기능의 S를 추가했다. 이런 경우 우리의 뇌는 S와 B를 양극단에 있는 대안으로 인식하게 돼 중간 대안인 A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된다.

실제 실험에서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카메라A(169.99달러), 중간 성능에 중간 가격인 카메라B(239.99달러), 고성능이지만 고가의 카메라C(469.99달러)를 두고 실험 참가자들의 선호도를 조사했다. 실험 결과 양자 택일(A, B)로 제시했을 때는 선택 비율이 각각 50%씩 나왔다. 하지만 삼자 택일(A, B, C)로 제시했을 때는 A(22%), B(57%), C(21%)가 되어 중간에 위치한 B의 선호 비중이 높아지는 타협 효과가 발생했다. 제품 자체는 아무것도 변화한 것 없이 단지 대안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선택의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타협 효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다. 대개 이런 곳의 코스 메뉴는 저렴한 A코스, 중간 가격대인 B코스, 고가의 C코스 등 세 개 옵션으로 구성돼 있다. 물론 사람들은 중간 가격대인 B코스를 많이 선택한다.

우리는 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별다른 고민 없이 벌어지는 선택이란 그저 손실 회피 본능이 개입된 타협 효과의 부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선택은 항상 선호를 반영하는 건 아니며, 심지어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 유도될 수 있다. 그러나 선택 행위는 매우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유도된 선호를 자신의 판단이라 믿기 쉽다. 유도된 선호가 드러난 강압보다 위험한 이유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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