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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 소송 남발은 검찰에 부담 … 표현의 자유 위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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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호 04면

“검사가 고소·고발을 하면 법무부 장관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청와대 구성원이 고소·고발을 하면 VIP(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또 법적 대응하는 청와대

‘정윤회 국정개입’ 보도와 관련, 청와대가 해당 언론사 발행인과 기자를 검찰에 고발한 28일 저녁. 한 현직 검찰 간부가 한 말이다. 그는 “검사나 청와대 직원도 인격체인 만큼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순 있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잦은 고소·고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치적 갈등은 정치로 풀어야지,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개인이나 청와대 구성원 개인의 고소·고발이 아니라 일부 단체가 대신 고발하는 형태에 대해서도 ‘자칫 청부 고발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박근혜 정부 들어 이 같은 ‘정치적’ 고소·고발이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사나 기자를 상대로 낸 민·형사소송은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만 12건이다.

지난해 10월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의 면담을 거부했다”고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지난 4월에도 박 대통령의 세월호 희생자 조문 연출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8월에는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가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고발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뒤 논란은 더 거세졌다. 검찰은 즉시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사범 전담수사팀’을 구성했다. 공기(公器)가 돼야 할 수사기관이 ‘심기경호’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 체계상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기 때문에 청와대나 권력기관의 법적 대응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검찰에 ‘정치검찰’의 오명을 씌워가며 법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력기관의 고소·고발 남발은 역대 정권의 오랜 구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개인 자격으로 여러 차례 언론사와 정치인을 상대로 정정보도 및 명예훼손 소송을 내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과 김영삼 정부 때도 청와대 구성원과 관련한 의혹보도에 대해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 ‘검찰과 법원을 이용해 언론을 옥죄려 한다’는 의심을 샀다. 상당수는 정치적 논란이 잦아든 뒤 소를 취하해 유야무야됐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나 청와대·정부 등 권력기관에 대한 비난을 개인에 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고소·고발 남발의 원인”이라며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해당 권력기관의 권력행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더욱이 법원의 최종 판단이 이뤄지기 전까지 언론사나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치주의란 권력기관이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지 권력기관이 형사사법기관을 이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며 “해명이나 중재 같은 수단을 두고 법적 대응에 매달리는 건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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