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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북한의 유엔대표부 공관원들이 한 미국 여교사를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쳐 미국 정부로부터 추방령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외신이 있었다. 명색이나마 외교관이란 호칭을 받는 직업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타국살이를 하고 있는가 살펴보면 일면 수긍도 간다.
북한은 해외 공관원의 가족동반을 극히 몇 나라를 빼놓고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우선 북한에 남은 가족은 해외주재원들의 현지 이탈을 막는 볼모구실을 한다. 폐쇄사회에서 개방사회로 나오는데 따른 심경의 변화를 최대한 막자는 뜻이다.
또 해외주재원의 가족들이 묻혀 오는 「자유세계의 오염」도 큰 문제다. 북한 주민들이 장막밖의 세계 물정을 안다는 것은 그 사회의 혼란을 재촉할 뿐이다.
문제가 된 뉴욕에서도 그들은 아파트 한층을 빌어 공관원 18명이 모두 합숙생활을 하고 있다. 「전 인민의 병영화」는 여기서도 통용되는 셈이다.
유네스코대표부와 통상대표부를 두고 있는 파리에서도 합숙생활은 마찬가지다. 합숙생활은 무엇보다도 상호감시가 용이하다.
이런 처지에서 해외근무를 감당해야하는 그들의 언행은 거칠 수밖에 없다. 세련과 정중이 본분인 외교관의 참모습과는 판이하다.
지난2월 콜롬비아에서는 북괴외교부 부부장이 입국비자 없이 공항을 빠져 나왔다가 경찰에 발각돼 강제출국을 당했다. 78년엔 북경에 근무하는 공관원이 통역하던 중공처녀를 욕보여 처녀가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76년 덴마크에선 교통사고를 내고 도망했다가 망신을 당한 경우도 있다. 가끔 아파트의 임대료를 물지 못해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76년 수단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 최대의 스캔들은 76년의 마약밀수사건.
스칸디나비아 삼국의 공관원들이 관련돼 모두 추방당했다.
헬싱키를 밀수중계지로 이용한데 격노한 핀란드는 대리대사를 쫓아내기도 했다.
외화가 부족한 북한은 외교관특권으로 싸게 구입한 담배와 술을 시중에 유출, 부족한 공관 운영비로 쓴다. 술·담배에서 그치지 않고 마약까지 손댔다가 꼬리가 잡힌 것이다.
특히 이번 추행사건미수는 전세계 외교관들이 모여있는 국제무대에서, 더구나 유엔총회가 열리고있는 때에 일어났다는데서 공연히 우리의 얼굴까지 뜨겁게 만든다.
북한이 폐쇄사회를 고집하는 한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북한이 해야할 일은 외국주재원을 다스리는 일보다는 바깥 세계의 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일이다. 북한인이 저지른 웃음거리는 우리도 참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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