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선심 사면'비판엔 아예 귀막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정부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422만여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어제 발표했다. 사면 대상은 도로교통법상 벌점 및 운전면허 관련 행정처분을 받은 사람이 420만70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연루자 13명과 한총련 관련자 204명 등도 포함됐다.

법무부는 이번 사면이 국민 대통합과 서민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생계난으로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초범이나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행정법규 위반 사범들에게 법적 제약을 없애줬다는 것이다. 물론 생계형 범죄로 인해 손발이 묶인 서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을 구제하기 위한 '물타기용'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 연루 정치인 대부분을 사면.복권시켜 이들에게 정치 재개의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역행하는 부패 사범은 배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놓고선 부패.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을 버젓이 포함시켰다. 쇼핑몰 인허가를 둘러싸고 뇌물을 받은 정치인과 기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형이 확정된 전직 장관 등이 그들이다. 정치 사면이니, 선심 사면이니 하는 비판이 나와도 할말이 없게 됐다. 과연 정부에 부패 척결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법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남용돼선 안 된다. 그럼에도 사면법은 그 요건과 대상.기준.시기 등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만큼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이용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사면법은 1948년 제정된 이후 57년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국회에도 5건의 개정안이 제출돼 있지만 여당의 반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면권의 남용을 막으려면 사면심사위원회 같은 견제장치를 두고 사면 대상자의 요건과 기준 등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사면법 개정에 적극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