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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정국 DJ 편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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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박근혜(얼굴) 대표가 특검법에 대해 11일 '위헌 논란'을 언급한 것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소 '원칙'을 강조해 온 박 대표가 법안이 발의된 뒤에 그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이 이례적인 데다, 어렵사리 성사된 야 4당 공조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1일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은 도청 테이프의 내용이 다 공개돼도 상관없다"며 "다만 정치권이 불법을 조장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야 4당 간에 특검법안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는 동안에 박 대표는 위헌 시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여옥 대변인은 "헌법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박 대표가 강조하는 원칙"이라며 "위헌 요소가 있으면 깨끗하게 하고 넘어가자는 것이지 야당 간 합의 정신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유승민 비서실장은 "특검법 발의 이후 당 안팎에서 테이프 내용 공개 등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와 박 대표가 여러 의견을 듣고 고민한 끝에 회의에서 말을 꺼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박 대표의 발언이 단순히 헌법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입원 중인 김대중(DJ) 대통령과 민주당을 껴안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국정원 발표에 따라 도청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 DJ 측이 도청 테이프 공개 때 받을 부담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박 대표의 발언에 대해 특검법의 공동 발의 당사자인 민주당과 민노당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낙연 원내대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며 공감을 나타냈다. 이 원내대표는 "위헌 시비를 최대한 줄이는 선에서 특검법안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법에 흠결은 존재한다"며 "법사위에서 거를 수 있다면 걸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도 불법 도청이 있었지만 자료는 모두 폐기해 공개할 수 없다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도청 자료만 공개한다면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노당은 "특검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법을 만들 때는 위헌이 아니었다가 제출한 이후 위헌이라는 논리는 무슨 논리냐"고 따졌다. 심 의원은 "이제 와서 독수독과(毒樹毒果)론을 근거로 위헌 논란을 벌인다면 수사도, 공개도 말고 불법도청 사건을 다 덮어버리자는 얘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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