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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평가 엇갈리는 고이즈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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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그래도 우정 민영화는 옳다."

비장한 표정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빌려 말했다. 8일 중의원 해산권을 발동한 직후 TV로 중계된 연설에서다. 고이즈미의 자기 확신과 대중에 대한 설득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反)개혁 세력에 맞서 외롭게 싸우는 지도자란 이미지를 다시 한번 부각시킨 연설이었다. 전략이 적중했는지 회견 직후부터 9일 오전까지 실시된 각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다소 상승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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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 지도자냐, 포퓰리스트냐=고이즈미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정치인이다.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정체에 빠진 일본 사회의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한 개혁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성역 없는 개혁' '고통을 동반하는 개혁'을 주창하며 집권했다.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은 '작은 정부'다. 기존의 자민당 본류는 성장과 분배를 모두 중시했다. 또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집단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 조율과 합의를 중시했다. 그 결과 정부의 역할과 규모는 나날이 비대해졌고 효율성은 떨어졌다. 고이즈미는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막대한 수신고를 보유한 우정공사를 민영화해 자금의 흐름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우정 민영화가 대표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4년여 동안 그가 실제로 이뤄 놓은 것은 별로 없다. 재정 개혁과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제대로 손도 대지 못했다. 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돼 온 도로공단은 비록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담합과 낙하산 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 지지자들은 당내 반개혁 세력의 저항에 책임을 돌린다.

반면 고이즈미에겐 명확한 비전 없이 구호만 앞세우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가해진다. 실제로 고이즈미는 체계적인 개혁 프로그램이나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다. "본인이 관심 있는 정책에만 집착하고 관심 없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악평도 있다.

또 컨센서스를 중시하는 일본식 정치 풍토를 무시하는 독선적 정치 스타일도 반발을 샀다. "선거에서 이미 검증된 사항"이라고 주장하며 정책에 따라올 것을 강요했다.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郞) 홋카이도대 교수는 "고이즈미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추구해 일본식 전통과 충돌을 빚었다"고 평가했다.

◆ 지지율 상승 이어질까=주요 언론들이 10일 보도한 여론조사에선 고이즈미의 중의원 해산에 찬성하는 비율이 반대를 앞질렀다. 내각 지지율도 해산 전에 비해 5%포인트가량 상승했다. 아사히 신문 조사에선 향후 정권이 자민당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비율이 38%로 민주당 중심이길 바라는 여론(28%)보다 높았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정치 관측통은 "고이즈미의 회견이 방송되고 자민당 정치인들이 집중적으로 매스컴을 탈 때 이뤄진 조사 결과"라며 일시적 상승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고이즈미의 정면 승부수와 대중에 확신을 심어주는 설득력이 또 한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고이즈미는 우정 민영화에 대한 찬반 여부로 이번 선거의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다. 그럴 경우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지난 4년 동안 보여준 고이즈미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종합적 심판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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