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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청 '핵폭풍'] DJ측 "뒤집힌 본말 … 모욕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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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국정원이 DJ 집권시절의 불법 도청 사실을 발표한 데 따른 반발이다. DJ측 최경환 비서관은 9일 "김 전 대통령의 최근 심기가 아주 좋지 않다"고 전한 뒤 작심한 듯 현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행해진) 미림팀 도청은 흐지부지되고 국민의 정부에는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며 "본말이 뒤집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 본질은 1997년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지 못하도록 했던 미림팀의 공작내용을 밝히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도청의 최대 피해자인 DJ가 가해자로 둔갑한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최 비서관은 또 "김 전 대통령은 도청을 하지 말라는 지시대로 (DJ정부 시절) 4명의 국정원장들이 불법 도청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확실히 믿고 있다"고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8일 "(국정원 발표에)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모욕"이라고 말한 데 대해선 "모욕은 우리가 당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평소 최 비서관의 언행을 볼 때 파격이다. 5일 국정원 발표 당일엔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했었다. DJ의 의중을 반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DJ 비서실장을 지낸 여권 중진도 "DJ가 (노 대통령에 대해) 몹시 섭섭해하신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변화는 국민적 관심이 DJ정부 도청에 모아지고,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관련자들의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DJ 측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커 정국의 소용돌이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 비서관은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필요에 따라 대책을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청와대는 DJ와의 갈등 기류를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은 9일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그동안 도청은 짐작만 되고 밝혀진 바가 없었는데 이번에 과거청산 차원에서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며 "국가 불법 행위의 전모를 밝히고 국민에게 보고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김만수 대변인이 전했다. 최인호 부대변인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노 대통령의 진정성이 (DJ 측에) 전달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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