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처드 전 미국 대북특사가 본 6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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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잭 프리처드 전 미 국무부 대북 특사는 "이번 4차 6자회담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한 최초의 본격적인 협상이었다"며 "그만하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달 말 회담이 속개되더라도 당장 공동합의문이 나오긴 힘들 것으로 본다"며 "협상은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4차 6자회담은 지금까지 한 그 어떤 6자회담보다 성공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한 세 차례의 회담은 형식적인 회담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이 이번에는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인 협상을 했다. 한국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장국인 중국의 참여도 돋보였다. 북한과 미국이 6자회담의 우산 속에서 양자회담으로 외교적 협상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가장 큰 성과다. 회담 결과를 물컵에 비유하자면 '물이 절반 이상 찼다'고 말하고 싶다. 낙관적이다."

-북한은 회담 막바지에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주장하며 경수로 공사 재개를 요구했다. 미국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경수로 문제는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경수로는 이미 '죽은' 프로젝트다. 우선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려면 법적으로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곧 레임덕이 된다. 설사 부시 대통령이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고 싶어도 그가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과 북한의 수석대표는 베이징에서 여덟 차례 이상 양자 접촉을 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선회를 의미하는가.

"내 대답은 '예스(Yes)'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취임한 이래 미국의 대북정책은 크게 변했다. 부시 1기 행정부 시절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극히 꺼렸다. 그러나 2기 행정부 들어 백악관과 국무부는 '6자회담 틀 속에서 양자회담을 허용한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선회한 것을 의미한다."

-선회한 배경은.

"세 가지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기 행정부 들어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위급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결론은 '기존의 대북정책을 고수할 경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로 부시는 자신의 최측근인 라이스를 국무장관에 기용했다. 라이스는 자신의 대북정책이 성공하길 원한다. 그는 성공하려면 종전과는 다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빨리 인식했다. 셋째로 크리스토퍼 힐을 6자회담 수석대표로 임명한 점이다. 그는 외교관 출신으로 전문성과 적절한 처신, 집중력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물이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조성한 갖가지 인위적인 장벽을 부수고 평양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결합돼 협상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다."

-이번 회담이 성과를 낸 배경에는 북한의 변화도 포함되나.

"그렇다. 김정일은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평양에서 만나'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며 '핵무기를 포기할 뜻이 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 협상단이 반색할 만한 얘기였다."

-북한이 변화한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의 전력 공급 제안이나 미국의 달라진 행동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근본적 결단을 했다고 본다. 북한이 13일간이나 협상을 계속한 것은 힐 대표의 성의있는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달 말 속개될 회담을 전망한다면.

"미국은 이번 4차 회담을 북핵 협상의 '끝내기 게임(endgame)'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처음에는 버티다가 막판에 가서야 양보하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이달 말 회담이 속개되더라도 쉽사리 끝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9월 또는 그 이후에도 회담은 계속될 것이다. 북한은 공동합의문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데다 합의문을 구속력 있는 문서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쉽게 합의하기 힘들 것이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 프리처드 전 대북 특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협상파 인사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선임국장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를 역임하면서 대북 정책에 깊이 간여해 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후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대북 정책을 김정일 정권교체 쪽으로 몰고가려 하자 이에 반발해 2003년 8월 사표를 냈다. 현재 워싱턴의 진보 진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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