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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한 보건행정의 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에 뇌염이 급속도로 번지고있어 환자수가 1천5백여명을 넘어섰다. 이대로 10월초까지 간다면 뇌염주기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68년이래의 최고발병률을 보일 것 같다.
보건당국의 공식통계로는 10일 현재 진성뇌염환자가 2백20명 발생에 사망자가 8명, 의사환자까지 합치면 l천1백34명 발생에 94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통계와는 달리 전남·북, 충남의 병원들은 몰려드는 환자를 미처 다 수용하지 못해 복도와 학교강당에까지 환자가 흘러넘치는 실정이다. 보건당국은 방역은 물론이려니와 우선 환자수부터 현저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같은 지방실정으로 보아 뇌염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무섭게 번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그동안 「뇌염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 사라지는 전염병」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병의 이상극성에 당황하고 있는 듯하나 이런 때일수록 방역진과 의료진의 분발이 요청된다.
사실 올해 뇌염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고는 자주 나타났었다. 우선 첫 뇌염환자(전남 완도)의 발생이 예년보다 13일이나 빨랐다. 무더위도 빨리오고 예년보다 길 것이라는 예보도 자주 있었다. 실제로 올해는 일본뇌염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섭씨 27도이상의 날씨가 10여일이나 길었다.
그결과 뇌염모기의 발생이 2주나 빨랐고 채집된 모기의 90%가 뇌염을 옮기는 큘렉스 모기였다.
여러 징조로 보아 뇌염의 창궐이 충분히 예고됐는데도 당국의 방역대책은 재빨리 이에 대처하지 못했다. 뇌염백신 구인예산이 1억4천여만원에 머물렀다가 뒤늦게야 전국 어린이 4백60만명에게 주사를 놨다. 이것도 대상어린이 1천l백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허술한 지방보건소의 의료설비 때문에 뇌염주사약이 크게 부작용을 일으켜 한때 접종을 중단하기조차 했다. 뇌염바이러스의 중간숙주인 돼지에 대한 접종은 거의 외면되다시피 했다. 올여름 초 8백만마리의 돼지가운데 90만마리만이 접종했을 뿐이다.
결국 이같은 뇌염무방비 때문에 올해의 뇌염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며 이 병의 특성대로 한번 발생하면 뚜렷한 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사망자는 늘게 마련이다. 안일한 보건행정이 얼마나 일을 그르치는가를 일깨워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더구나 뇌염환자의 발생을 일단 의사(의증)환자로 다루고 혈청검사가 끝나는 2주일 후에야 진성여부를 판가름하는 보건행정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환자는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가는데도 당국은 진성뇌염이 아니라고 강변만 하고있다. 전염병에 대한 병리학적인 원인규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은 전문의학자들이 할 일이지 보건당국의 관료들이 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사회는 우선 건강한 환경, 행복한 생활이 첫째 목표가 되어야한다. 따라서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 복지사회의 한 척도가 된다. 아무리 GNP가 늘었다고 소리높이 외쳐도 해마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사회는 결코 복지사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것이 당국의 안일한 행정 때문이었다면 국민들은 구호와 실제의 괴리에 큰 실망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비록 늦었으나 당국의 최선의 방역대책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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