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인권위, 북 인권에 계속 침묵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받고도 수개월간 공개를 꺼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인권위로부터 용역을 받은 동국대 고유환 교수팀이 탈북자 150명을 상대로 조사하여 작성한 것이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참혹, 그 자체였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됐던 여성 탈북자는 "병원에 약이 없다고 안전원이 한 임신부의 배를 발로 차 유산시켰다"고 증언했다. "공개처형을 직접 본 적이 있느냐"는 설문에 7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굶어 죽은 시체 옆에서 떡장사를 한다는 증언도 있었다.

인권위 설치의 목적은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한다'로 돼 있다. 이를 근거로 인권위는 중.고 학생의 강제 두발단속은 인권침해라는 권고까지 했다. 심지어 이라크 파병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하기도 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해당 부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권 중시 원칙을 고수해온 것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 왔다. 이번 보고서 의뢰가 인권위 창설 이후 처음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공개 여부를 놓고도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런 인권위의 모습은 자가당착이고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이라는 점은 인권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이제 균형감각을 찾아야 한다. 물론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법적으로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정권이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필 이유도 없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인권 문제를 북한에도 똑같은 잣대로 적용해야 마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