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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평화협정 되려면 아직 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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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남북한이 광복절 이전까지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MDL) 주변의 선전 수단을 모두 철거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지난주 중동부전선에서 북한 군인들이 '조선은 하나다'라는 대남 선전벽화를 헐어내고 있다.[연합뉴스]

휴회 중인 베이징 제4차 6자회담의 합의문 초안에 들어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합의는, 실천될 경우 남북 관계와 동북아의 전략 지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제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 지역의 안보 시스템을 새로 짤 수도 있다.

그러나 1953년 6.25 전쟁을 휴전하면서 체결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 동북아 긴장 해소의 징검다리= 무엇보다 남북한 군대 사이의 신뢰 구축과 긴장 완화가 필수다.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만큼 북의 위협이 해소돼야 한미연합사를 해체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 및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군인사의 상호 방문 및 군사훈련 상호 참관 등에 의한 신뢰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또 휴전선을 중심으로 집중 배치된 기계화부대와 장사정포, 전투기 등을 후방으로 철수시켜 기습 공격 가능성을 줄이는 게 평화체제 구축의 전제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진보의 대결이 있겠지만 남측의 일방적 양보만 아니라면 긴장완화는 통일을 위한 사전 준비가 될 수도 있다.

◆ 한.미 동맹도 재편=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맨 먼저 영향을 받는다. 유엔사는 정전체제 유지 임무를 맡고 있다.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남북 사이는 휴전이 아니라 전쟁 종료 상태가 된다. 이럴 경우 유엔사의 임무가 만료된 만큼 해체 수순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 해체는 한.미 동맹 구조조정으로 연결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직하는 법적 근거가 유엔사다.

따라서 유엔사가 해체되면 미군 4성 장군이 연합사령관을 계속 맡을 이유가 없어진다. 연합사의 지휘구조가 재편될 수밖에 없다.

한.미는 이런 점을 감안, 지난해부터 미래 양국의 동맹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SPI)를 열고 있다. 미군의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유엔사 해체 이후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 등을 논의 중이다.

◆ 주일미군에도 영향= 유엔사 해체는 또 일본 자위대의 7개 기지를 후방기지로 사용하는 주일미군에도 영향을 준다. 유엔사가 폐지되면 일본의 후방기지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주일미군의 이동과 재편 논란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6자회담과 남북한 및 미.일.중.러의 정부 관계자 및 학자가 참여하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의 틀을 활성화, 동북아에서 새로운 안보 체제로 전환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북, 남북 간 평화협정 주장하다
체제 보호 위해 북·미 간 체결 선회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후 북한은 60년대 말까지 간헐적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했다. 이 당시 북한이 지목한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한국과 북한이었다. 하지만 74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5기 제3차 회의 때부터 협정 당사자가 미국으로 바뀌었다. 미국과 베트남 간의 평화협정을 모델로 삼아 대응전략을 바꾼 것으로 분석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구호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주로 대남 통일전선전술의 하나로 활용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의 주장은 보다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미국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내부 권위주의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평화협정을 십분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94년 4월 북한은 기존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 뒤 이를 논의하기 위해 북.미회담을 열 것을 공식 제안했다. 그러고는 정전협정 관리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의 북측 대표단을 판문점에서 철수시켰다. 그해 연말엔 군사정전위 중국 측 대표단도 평양에서 완전 철수했다.

95년에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유엔사 해체를 거듭 주장하면서 "평화보장 체제 협상을 거부할 경우 정전 체제를 청산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2000년대에 들어선 뒤에도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 위협은 계속됐다. 제2차 북핵 위기가 한창이던 2003년 2월 판문점 북측 대표부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 돌입할 경우 정전협정 이행 의무를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4차 6자회담 개막 나흘 전인 지난달 2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화체제 수립의 당위성을 언급했다. 북.미 간 담판을 앞두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슬쩍 공개한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와 군축회담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도 결국엔 평화협정을 맺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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