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 생수 팔아 위안부 도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아직 살아계시다면 평양의 오빠도 이 물을 마시려나…."

▶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에서 3일 북한산 생수인 강서청산수 판매 개시 행사가 열려 관계자들이 판매대금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기금 모금함에 넣고 있다. 신원주 인턴기자

3일 아름다운 가게 서울 안국점. 길원옥(77) 할머니는 고향인 평양 서남쪽 남포시에서 왔다는 '강서청산수' 병을 자꾸 어루만졌다. 13세 때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만주로 간 길 할머니는 만주와 중국 각지의 위안소로 끌려다니다 광복이 되자 무작정 배를 타고 인천항에 내렸다.

그러나 초라한 행색으로 고향에 돌아갈 순 없었다. 결국 한국전쟁은 길 할머니를 가족과 영영 갈라놓았다. 길 할머니는 평생을 붙어다닌 지독한 성병으로 결혼은커녕 한 달에 절반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생활은 번데기.옥수수를 팔아 어렵게 꾸려왔다.

이제 길지 않은 여생에 길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북한의 가족을 만나는 것과 일본의 성의 있는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했고 매주 수요일 사단법인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시위에도 나간다. 강서청산수가 많이 팔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이 앞당겨지는 것도 할머니의 남은 소원이다.

아름다운 가게는 이날 수도권 30개 매장에서 강서청산수 판매를 시작했다. 강서청산수는 남포시 강서구 청산리에서 용출되는 천연광천수다. 가게에서는 350㎖ 한 병을 시중보다 500원 싼 2000원에 판매한다. 강서청산수를 북한에서 들여와 판매하고 있는 대동무역에서 원가에 내놓았다.

가게는 8월 한 달간 생수를 판매해 남은 수익금 전액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기금으로 정대협에 전달할 예정이다. 박물관 건립위원회는 종군위안부였던 황금주 할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며 30여 년간 모은 돈 1억원을 비롯해 현재까지 3억원을 모금했다.

이번 행사는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와 정대협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마련했다. 국민운동본부의 이장희 상임대표는 "종군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최초의 남북 민간교류였던 여성단체 학술대회에서 다뤄진 의제"라며 "같은 민족의 물자로 민족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고 행사 의미를 설명했다. 대동무역 김영미 전무는 "북한 측에 이번 행사의 취지를 전했더니 '좋은 데 쓰이니 보람있구먼요'라면서 기뻐하더라"고 전했다. 강지원 박물관 공동건립추진위원장은 "전쟁에 희생당한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반대하고 인류애를 기르는 세계적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근영.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