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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처에 "금융공황"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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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융공황의 먹구름이 세계경제에 드리우고 있다.
대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지고 중소은행들이 문을 닫고 있다.
동구와 중남미·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외환사정은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원유수입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던 아랍제국에서조차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있다.
30년대 금융공황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안전판구실을 해온 IMF(국제통화기금), BIS(국제결제은행) 등 세계금융기구들도 현재의 위기를 막아내기엔 충분치 않다는 우려도 들린다.
신용이란 허구를 축으로 돌아가던 국제금융의 메커니즘에 균열의 조짐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불안의 씨앗은 세 나라에서 싹트고 있다.
미국·폴란드 그리고 서독. 국제금융 관계자들은 현재의 신용불안상태가 현실화된다면 이들 세 나라에서 시작될 것으로 보고있다.
전후최악의 기업도산 사태를 맞고있는 미국에서는 올 상반기 22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대부분이 군소 지방은행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는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역오일쇼크. 경기악화로 인한 원유수요의 감퇴가 오일달러의 축소를 가져왔다.
불과 2년전만 해도 연간 1천억달러를 웃돌던 OPEC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는 50억달러의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그동안 넘쳐흐르던 오일달러를 미·유럽 등의 은행을 통해 개도국으로 환류시키던 국제금융의 중요한 축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고금리와 경제불황으로 극도로 시달리고있는 개도국에 갈 돈이 크게 줄어들었다.
새 빚을 얻어 이미 빌어쓴 돈을 갚는 일조차 힘들게됐다.
비산유개도국의 중·장기외채는 5천2백50억달러. 올해 갚아야할 이자만도 3백41억달러다.
문제는 이 많은 돈의 대다수가 공적 베이스가 아닌 일반 국제상업은행에 의해 대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71년당시 전체융자의 60%정도가 세계은행 등 공적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던 것이 오일쇼크이후 이 비율이 역전, 80년말 현재 일반상업은행의 비율은 63%에 이르고있다.
채무상환 연기나 또는 극단적으로 채무불이행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선진각국의 큰 은행들은 결정적 피해를 입게될 것이다.
그동안 높은 컨트리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가산금리(기준금리에 더 얹어주는 금리)의 짭짤한 맛을 노려 대출을 확대해온 국제상업은행에 위기가 닥쳤다.
이미 미국의 이웃나라 멕시코가 무려 8백억달러의 빚에 대한 상환연기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중 미국은행이 물린 돈이 3백억달러.
더욱 심각한 것은 이중 약 1백20억달러는 멕시코의 사기업에 민간베이스로 빌려준 것이라는 사실. 반드시 상환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러나 멕시코문제는 그런대로 어떻게든 풀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발벗고 나서 국제적인 구제금융을 실시할 채비고 멕시코의 방대한 자원도 튼튼한 방파제가 되고있다.
문제는 폴란드다.
동구권 최대의 채무국 폴란드가 안고있는 외채는 2백80억달러. 규모는 멕시코보다 작지만 훨씬 악성채무다.
당장 오는 9월10일까지 상환해야하는 빚이 무려 1백10억달러. 수출수입을 몽땅 털어도 모자란다.
81년 GNP성장률이 마이너스 13%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운 폴란드로서는 난망한 금액이다.
더우기 폴란드는 개도국의 구제금융을 주로 담당해온 IMF에도 들어있지 않고 미국 등 서방정부들이 폴란드의 공공부문 채무의 상환연기에 교섭조차 거부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채무불이행을 피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동구권의 대부격인 소련도 폴란드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폴란드사태의 불똥은 미국보다도 서독쪽에 크게 튈 것이다.
폴란드가 안고있는 빚의 약 60%가 서독 금융기관으로부터 나갔다.
그러잖아도 텔레풍겐사의 도산으로 무려 46억마르크가 물려있는 서독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앞으로 또 다른 대형 도산사태가 일어난다면 견딜 여력이 있을지 의문인 상태다.
폴란드뿐 아니라 루마니아·터키·수단·잠비아·자메이카·자이레·베트남·북한 등도 상환연기가 불가피하다.
그 여파로 무려 l조8천억달러의 거대한 예금규모를 갖고있는 유로시장에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로시장의 불안은 곧바로 유로시장 전체의 약 24%를 점하고있는 미국으로 비화될 것이다.
이미 올2·4분기에 적자를 면치 못한 미국의 체이스맨해턴이나 컨티넨틀일리노이, 또는 외우내환이 겹쳐 무배당결산에 나서고있는 서독의 드레스나, 코메르츠, 웨스트란데스 등 세계적인 대은행들조차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제로섬·소사이어티」의 저자인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레스터·더로는 현재의 상태가30년대의 대공황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첫째 대공황 전인 1926∼29년에 미국의 실질GNP는 거의 제로성장을 보였는데 최근 3년간도 마찬가지다. 둘째 29∼33년사이 미 월가의 주가는 85% 하락했는데 68년이후 물가상승분을 감안한다면 약 65%정도 떨어졌다.
세째 은행도산의 조짐이 강하다. 네째 당시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경영위기가 증가했고 특히 자동차·항공산업·주택 등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다섯째 대공항시와 마찬가지로 농업소득이 격감하고 있다. 작년의 풍작에도 불구하고 농업소득은 44%나 떨어졌다. 여섯째 주택·토지가격의 하락도 대공황 때와 유사하다.
물론 30년대의 대공황시와는 달리 요즘은 각종 국제금융기관들이 씨줄·날줄처럼 짜여져 안전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신용불안위기가 일대 금융공황으로 비화되지 않으리라고는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하고 있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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