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불문율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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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운영팀장

이달 초 미국 메릴랜드대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미식축구 경기에서 생긴 일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선수들이 다가가 악수를 청했는데 메릴랜드대 선수들이 꿈쩍도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선수들이 머쓱하게 물러났고 심판은 악수를 거부한 메릴랜드 대학팀이 비신사적 행동(unsportsmanlike conduct)을 했다고 판정, 15야드 페널티를 부과했다. 악수 거부는시즌 전부터 설전이 불붙는 등 두 팀이 치열한 지역 라이벌 관계라 일종의 기세 싸움을 벌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뉴스를 보면서 악수를 하지 않는 것이 반칙에 해당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미 스포츠팬 사이에서 “처음 보는 일”이라며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사소한 일 같지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품격 있는(classy) 선수로 성장하겠는가”라는 어느 팬의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스포츠에는 불문율이라는 게 많은 편이다. 법 조문처럼 룰 북(rule book)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지켜야 하는 관습의 일종이 불문율이다. 불문율은 특정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규범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투수가 타자를 맞혔을 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지 말라는 것이 있다. 기싸움에 밀리지 말라는 의도가 있지만, 어찌 됐든 결과적인 폭력에 대해 당사자가 사과를 하는 것이 사회의 상식에 맞다. 그래서인지 요즘 불문율이 하나둘 깨지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야구에서 몸 맞는 공이 나오면 투수들이 모자 챙에 손을 갖다 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벤치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투수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라며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추세다. 메이저리그 야구도 자신의 타구를 멋지게 잡은 상대 수비수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등장해 팬들이 화답하는 게 이슈가 되는 걸 보면 세상사를 보는 기준은 동서양을 떠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는 냉혹한 승부 이전에 동반자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키우게 하고, 지켜보는 팬들도 그 과정을 수긍하게 만든다. 스포츠를 보고 성장하는 청소년에게도 훨씬 교육적이다. 불문율의 진화는 치열한 현실경쟁에 신물 나고 지친 나머지 오로지 승리에만 집착하던 스포츠에서 오히려 인간미를 찾고 싶어 하는 심리적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신사적 행동을 장려하는 룰을 만들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운영팀장